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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비도제일장로교회August 31, 2025 아내를 남편의 다스림에 매심(창3:16)
    [아내를 남편의 다스림에 매심-2(창3:16)]   결혼한 상태에서 자기의 결정과 행동이 남편을 필연적으로 범죄로 끌어들이는 것임을 생각지도 못하였다. 따라서 자기의 결정과 행동이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만 판단하였다. 여자는 혼자 결정하고 행동한 후에 같은 것을 아담에게 그대로 요구하였다. 남편의 허락과 승인 없이 일을 저지르면서도 남편에게 같은 것을 하도록 유인하였다. 따라서 남편도 반성과 심사숙고의 시간을 가질 수 없었다. 아내의 제시대로 즉각적으로 행동하였다. 아담은 아내의 결정을 배척할 수 없었다.남편도 여자의 단독결정을 따랐고 또 그대로 행동하였다. 이 방식으로 하나님을 향한 반역이 일어났다. 하나님은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구조를 바꾸기로 하셨다. 그것은 바로 여자를 남편의 다스림에 매는 것이었다. 창조주는 여자를 남자에게 굴종시키셨다. 그리하여 남자의 결정과 허락 아래 모든 행동과 결정이 이루어지게 하셨다. 남자의 결정과 허락 아래 일을 진행하므로 여자는 더욱 신중하고 깊이 반성하게 되었다. 더 이상 여자 혼자 결정하고 일을 집행하지 못하게 되었다. 남자의 다스림 밑에 두는 것은 남자의 허락을 받아야 여자가 행동할 수 있음을 말한다. 여자는 모든 행동과 활동에 있어서 남자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여자가 남자의 허락을 받아 행동하고 활동할 수 있음을 말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여성해방운동은 창조주가 세우신 가정질서를 허는 일이어서 결국에는 가정이 해체되는 데 이를 것이다. 가정이 해체되면 사회가 해체된다. 가정이 해체되면 사회는 인륜사회이기를 그치고 범죄 집단으로 전락한다. 남녀 간의 관계에 법질서가 없어지기 때문에 불법과 반인륜적인 삶의 방식에 호소한다. 또 남녀 간의 관계의 질서가 없어지기 때문에 폭력에 호소하게 한다. 여자가 돈을 벌어 자립할 수 있어도 남자의 그늘 아래 살아야 한다. 남자와 함께 살며 자녀들을 낳아야 여자의 인격이 완성된다. 여자는 남자 옆에 있어서 남자를 돕는 것으로 여자의 본분을 다한다. 이로써 여자가 여자로서의 인격완성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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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7
    오비도제일장로교회August 24, 2025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을 부가하심(창3:16)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을 부가하심(창3:16)]하와가 범죄의 시작점이다. 그러나 그녀는 아담을 돕는 자의 신분에 있었다. 또 아담과 하와는 결혼하여 한 공동체였다. 여자의 결정도 가정 전체의 결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가정 전체의 결정이 되려면 남편이 결정해야 한다. 아내는 조언하고 결정은 남편이 하는 것이 하나님 세우신 가정의 법질서이다. 범죄의 시작은 아내가 했어도 전체의 범죄가 된 것은 남편의 결정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여자가 받는 벌은 전체적인 책임이 아니다. 아내는 범죄의 시발자로서만 책임을 진다. 전체적인 결정은 남편에 의해서 이루어졌으므로 남자가 전체적인 책임을 지고 그에 따라 벌을 받는다. 하나님은 여자에게 남편을 유혹에 넘어지게 한 부분에 대해서만 책임을 물어 벌을 내리셨다. 하와에게는 총체적인 형벌이 아니라 부분적인 책임에 따른 해산의 고통이 부가되었다. 하와는 모든 후손을 출산해야 할 출산자로 있었다. 그러려면 그의 존재는 보장받아야 했다. 출산자의 자리에서 소임을 하는 중에 고통으로 책임을 수행하도록 하셨다. 해산의 고통은 두려운 일이나 죽는 일은 아니다. 출산은 여자가 피할 수 없다. 여자를 통해서만 생명체들이 출산되도록 창조주가 정하셨기 때문이다. 범죄의 시발자임에도 불구하고 출산을 허락하셨으니 그것이 복이다. 그러나 출산은 고통을 동반해야 한다. 창조주는 범죄에 대한 형벌로 오히려 여자에게 자녀생산의 복을 내리셨다. 여인은 고통 중에 해산을 하게 되었다. [아내를 남편의 다스림에 매심(창3:16)]하와는 아담에게 마주서는 도움이었다. 마주서는 것은 남자에게 굴종된 상태가 아니므로 여자는 자기 독자적으로 결정하였다. 남편에게 묻고 의논해서 결정하지 않았다. 자기 판단대로 결정을 내리고 일을 저질렀다. 남편에게 허락을 받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하였다. 남편의 판단과 결정을 기대하지도 않았다.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는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도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다. 자기의 현재 상황에서 유혹자의 제안을 좋게만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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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비도제일장로교회August 16, 2025 사탄이 망하고 그의 나라가 멸할 것을 선언하셨다(창3:15)
    [두 종족이 원수 됨으로 미움이 삶의 방식이 되었다(창3:15)]옛 뱀 곧 사탄은 뱀을 도구로 하여 인류를 파멸케 하였다. 그러므로 뱀과 여인의 후손 간에 원수가 됨으로 미움이 사람들의 삶의 일차적인 방식이 되었다. 사탄은 뱀을 도구로 사용하였고 뱀으로 나타났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뱀을 심판하셨다. 그러면서 뱀을 넘어서서 유혹의 방본인을 심판하셨다. 사탄이 뱀을 이용하였고 뱀으로 나타났으므로 하나님은 사탄을 직접 지칭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사탄과 여인 간에 원수관계를 설정하셨다. 또 사탄의 후손과 여인의 후손 간에 원수가 되게 하셨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창3:15). 이로써 뱀의 후손과 여인의 후손 간에 늘 미움과 전쟁이 생활의 방식이 될 것임을 밝히셨다. 심판 선언 이후에는 사탄과 여인의 후손들 간에만 아니라 사람들 간에도 전쟁과 증오가 삶의 방식이 될 것임이 분명히 드러났다. 사람들이 처음 마주 대할 때 미움이 대응의 일차적 방식이어서 사랑으로 대하지 않게 되었다. 곧 사랑의 대면의 방식이 아니게 되었다.   [사탄이 망하고 그의 나라가 멸할 것을 선언하셨다(창3:15)]사탄은 패망으로 작정되었다. 그의 나라도 궤멸될 것을 분명히 하셨다.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3:15).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하는 것은 사탄으로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다. 그것은 사탄의 나라가 궁극에는 멸망하여 다시는 서지 못할 것을 밝히는 것이다. 사탄은 인류를 유혹하여 하나님을 반역하게 함으로 하나님의 나라 대신에 자기의 나라를 세우려고 하였다. 인류를 자기의 백성으로 삼기로 하였다. 그러나 그 시도가 성립하지 못하도록 작정되었다. 하나님이 인류를 사탄의 지배에서 빼어내심으로 그렇게 하셨다. 사탄의 머리를 깨뜨리는 것은 사탄으로 인류의 머리 곧 왕이 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사탄이 그의 백성을 잃게 되면 그의 나라가 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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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비도제일장로교회August 10, 2025 하나님은 뱀에게 저주를 선언하셨다(창3:14-15)
    [심판 선언(창3:14-19)-2] 구주에 의해 구원이 이루어지면 유혹자 원수는 더 이상 창조세계에 자리가 없을 것을 하나님은 선언하셨다. 범죄한 인류를 향하신 하나님의 심판은 정죄와 사망과 멸망으로의 작정이 아니었다. 따라서 사형의 즉각적인 집행이 아니라 집행의 연기이고 생존의 허락이었다. 또 구원의 길을 내기로 작정하셨음을 알림이었다. 언약의 주로 나타나시어 처음 언약을 성취하여 창조의 목적을 이루려고 구속주가 되기로 하셨다. 그리고 구속주와 구속의 방식을 알리셨다. 창조주는 자기의 거룩을 현시하시면서 오히려 인류의 범죄로 더 깊은 사랑을 나타내기로 작정하셨다. 그리하여 반역한 백성을 돌이켜 다시 자기의 백성으로 삼기로 하셨다. 말할 수 없는 사랑의 법으로 세상을 구속하여 자기에게로 돌이켜 인류를 자기의 자녀로 삼기로 하셨다. 하나님은 법에 의해 그들을 징계하셔도 구원을 위해 그들의 존재를 보장하기로 하셨다. [하나님은 뱀에게 저주를 선언하셨다(창3:14-15)] 뱀에 대한 저주는 기어 다니면서 흙에 사는 것들을 먹게 하심이었다. 뱀은 사탄의 도구로 이용되어 사람을 유혹한 당사자가 되었다. 그러므로 뱀은 땅의 짐승들 중 가장 저주받는 존재가 되었다. 배로 기어 다니는 천한 존재가 되어 흙 속에 사는 것들을 먹게 되었다. 그러면 하나님의 저주 선언 이전에는 뱀은 네 발로 다른 짐승들처럼 걸어 다녔음을 알 수 있다. 저주로 인해 네 발이 퇴화하였다.  [하나님은 뱀의 후손과 여인의 후손 간에 원수 됨을 설정하셨다(창3:15)] 뱀은 사람과 원수가 되어 사람과 뱀 간에 늘 적대행위가 있게 되었다. 뱀은 사람을 보면 발꿈치를 물려고 하고 실제로 물어서 죽게 한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뱀을 죽이려고 한다. 또 사람은 뱀을 본능적으로 더럽고 혐오스럽게 본다. 처음 심판 선언 이후 지금까지 사람과 뱀 사이에는 적대감과 반감이 작용한다. 뱀이 사람을 속이는 일에 도구가 되었으므로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고 사람의 적개심과 반감을 받아 보살핌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이에서 나아가 뱀을 죽이는 것을 정당한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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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4
    오비도제일장로교회August 02, 2025 심판 선언(창3:14-19)
    [심판 선언(창3:14-19)]   선악판단에 있어서 하나님의 판단만을 따르기로 정해져 있는데 그들은 그것을 완전히 부정하였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가 스스로 선악을 결정하기로 작정하였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창조주가 하나님 되심을 부정하였다. 따라서 백성이 하나님의 자리에 서기로 작정하고 봉기하였다. 창조주의 영광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으로서의 권위와 엄위도 완전히 무시하였다. 이렇게 하나님을 대항하여 일어섰으므로 그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일 수 없게 되었다. 피조물로서 하나님을 반역하였으므로 그것은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는 법이다. 그들은 창조주의 백성되기를 거부하였다. 더 이상 창조주를 하나님으로 섬기지 않기도 하였다. 따라서 하나님은 자기의 백성을 잃게 되었다. 창조주의 인격을 발로 밟고 그의 영광을 더럽혔으며 엄위를 무너뜨렸다. 그러면 하나님의 인격의 즉각적인 반응은 분노와 정죄와 멸망을 선언하는 것이다. 그러나 창조주는 자기의 영광이 훼손되었어도 즉각 진노와 멸망을 선언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범행자들을 즉각 쓸어버리고 새로운 인류를 지으시기를 기뻐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그의 인격이 밟힘당하였어도 범죄대로 갚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셨다. 창조주의 영광과 엄위의 법대로 대하기를 기뻐하지 않으시고 언약의 하나님으로 행하기로 하셨다. 비록 반역을 하여 백성 되는 것을 거부하였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다시 돌이켜 백성을 삼는 길을 택하셨다. 그는 거룩의 법대로 행하신 것이 아니라 더 깊은 사랑으로 범죄자들을 돌이켜 다시 그들의 하나님 되기를 바라셨다. 하나님은 범죄자들을 심판하시되 멸절이 아니라 그들의 생명연장을 바라셨다. 죽음의 법은 도입되고 계속되지만 멸절이 아니라 그들의 생명의 존속을 보장하기로 하셨다. 그러므로 심판은 형벌과 함께 사랑의 선언이었다. 따라서 창조주는 언약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시고 구주로 나타나시어 구원의 약속을 선언하셨다. 유혹자가 큰 형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의 멸절이 아니라 그 존재를 인정하기로 하셨다. 심판주는 궁극에 사탄이 멸망될 것을 밝히셨다(창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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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비도제일장로교회July 27, 2025 첫 조상들의 책임전가는 후손에게 전달되어 인간의 본성이 되었다(창3:12-13)
    [하나님은 여자에게 남편으로 범죄하게 한 동기를 물으셨다(창3:13)]여자에게는 “왜 금한 과실을 먹었느냐?”가 아니고,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라고 물으심으로 여자가 금단의 과실을 먹고 남편도 먹게 하였음을 추궁하셨다. 여자도 아담처럼 책임 소재를 자기에게서 유혹자에게로 돌렸다. “내가 처음부터 먹을 마음을 가진 것이 아니라 뱀이 꾀므로 먹었다”라고 답하였다. 그것은 범행 자체를 부인한 것이 아니다. 먹었음은 사실로 인정하였지만 책임을 뱀에게 돌려 뱀이 꾀므로 먹었다고 하였다. 그것은 간접적으로 창조주 하나님에게 돌림이었다. 하나님이 만드신 뱀이 나를 꾀었다고 밝힘으로 그렇게 하였다. 하나님이 뱀이 만들지 않으셨으면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변명하였다.   [뱀은 유혹의 장본인이므로 바로 심판하셨다(창3:14-15)]하나님은 곧바로 심판을 선언하셨다. 모든 짐승들 중에서 뱀이 가장 저주를 받을 것으로 하나님은 선언하셨다. 뱀은 일생 동안 배로 기어 다니게 저주되었다. 그리고 여인의 후손과 원수가 되어 전쟁상태에서 살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멸망에 이르게 정해졌다. [첫 조상들의 책임전가는 후손에게 전달되어 인간의 본성이 되었다(창3:12-13)]아담과 하와 중 아무도 자기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아담은 모든 책임이 자기에게 있지 않고 여자오 뱀에게 있다고 변명하였다. 그들은 인격체이므로 자기가 한 일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그 행동에 상응하는 벌을 감수해야 한다. 아담과 하와가 받을 형벌은 죽음이다. 인격체이므로 이 책임도 담당해야 당연하다. 그러나 인격적 존재는 계속적인 인격의 존재를 본능적으로 갈망하기 때문에 책임을 거부하였다. 이 책임 전가가 후손에게 전달되었다.   [심판 선언(창3:14-19)]첫 인류의 반역으로 하나님 나라에 대한 하나님의 경륜이 꺾이게 되었다. 그 백성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파기하고 반역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 노릇하는 것을 거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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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비도제일장로교회July 20, 2025 아담과 하와 그리고 뱀의 순서 곧 사건 발생의 역순으로 물으셨다(창3:11-14)
    [아담과 하와 그리고 뱀의 순서 곧 사건 발생의 역순으로 물으셨다(창3:11-14)]그들은 계명을 범하여 숨었다고 말하지 아니하고 벗었으므로 숨었다고 말하였으므로, “누가 네게 벗었음을 알게 하였느냐”고 물으셨다. 이로써 유혹자가 개입하였음을 시사한다. [죄를 범한 책임은 아담에게 있었다(창3:11)]하나님은 범죄한 책임을 아담에게 물으셨다. 범행의 핵심은 선악과의 과실을 먹은 것이었다. 그러므로 “내가 너더라 먹지 말라고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라고 물으셨다. 모든 범행에서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은 바로 아담 자신이었다. 하나님이 아담과 언약을 맺으셨고, 여자에 대한 모든 책임도 아담에게 지우셨기 때문이다. 뱀도 먼저 심문 받을 대상이 아니다. 뱀도 아담의 다스림의 영역에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담은 자기의 책임과 범행을 곧바로 인정하지 않았다. 책임을 하와 곧 여자에게로 전가하였다. 그러므로 여자에게 물으셨다. 여자는 뱀에게로 책임을 전가하였다. 그가 유혹의 원흉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담이 책임을 전가함으로 하와와 뱀을 심문하셨다.  [아담은 책임 소재를 여자에게 돌렸다(창3:12)]인격체는 자기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자기가 결정해서 일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고 하나님의 위엄을 무시하여 반역한 존재의 경우는 전혀 달랐다. 범행의 책임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은 바로 형벌을 뜻한다. 그 형벌은 언약대로 죽음을 뜻한다. 인격체는 죽는 것을 결사적으로 반대하게 되어 있다. 아담은 모든 책임을 여자에게 돌렸다. 그것도 여자를 만들어 자기에게 아내로 주신 창조주에게 돌렸다. 여자도 뱀에게 책임을 돌렸다. 아담은 간접적으로 책임 소재를 하나님께 돌렸다. 여자를 만들어 자기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당신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가 내게 줌으로 먹었다”고 하여 책임을 회피하였다. 이렇게 책임을 전가할 뿐만 아니라 그 책임을 창조주에게로 귀속시킨 것은 그의 범행이 반역이었음을 반증한다. 최종 책임이 창조주 하나님에게 있다고 반항한 것은 아담이 반역하였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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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비도제일장로교회July 12, 2025 하나님은 범죄자들을 자기 앞으로 부르셨다(창3:9-11)
    [하나님은 범죄자들을 자기 앞으로 부르셨다(창3:9-11)]여호와는 아담에게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심으로 그들을 부르셨다. 아담은 자기가 벗었으므로 두려워서 숨었다고 하여 자기들의 신변에 일이 생겼음을 밝혔다. 계명을 어겼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다고 하지 않았다. 벗고서는 하나님 앞에 나설 수 없어서 숨었다고 하였다. 이제까지 벗은 상태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부르심에 벗었으므로 숨었다고 대답하였다. 바로 사실을 고하지 않을 줄 아신 하나님은 사건의 본질을 지적하셨다.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고 한 그 나무 실과를 먹었느냐?”라고 물으심으로 범죄사실을 바로 드러내셨다. 하나님 앞에 피하고 싶었지만 피할 수 없었다.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고 한 그 나무 실과를 먹었느냐?”라고 물으셨으니 범죄한 사실을 더 이상 숨길 수도, 변명할 수도 없었다.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 곧 여호와로 오셨다(창3:8-14)]반역한 백성을 향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발함은 응당하다. 그러나 하나나님은 칼을 배들고 그들의 목을 내려치려는 자로 오시지 않았다. 그들을 당장 사형시키려고 오시지 않았다. 하나님은 백성의 하나님으로 오셨다. 언약백성의 하나님으로 오시므로 여호와로 표기되었다(창3:9,13-14,22-23). 여호와 하나님은 범죄하여 반역한 백성을 살리려고 오셨다. 반역자를 벌하여 멸망시키려고 오신 것이 아니다. 그들의 하나님으로 오셨다. 그들이 반역했어도 아직도 백성으로 여기고 오셨다. 심판주로 오셨지만 그들을 다시 살리려고 오셨다. 다시 돌이켜 자기의 백성을 삼으려고 오셨다. 그러므로 구주로 오셨다. 범죄한 대로 멸망시키기를 기뻐하지 않으셨다. 죄 때문에 죽어야 하지만 어떻게 하든지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다. 심문과 심판은 벌을 주어 멸망시키려고 하신 일이 아니었다. 심문과 심판을 통해서 그들을 구원하여 창조경륜대로 자기의 백성으로 삼으시려는 작정으로 오셨다. 하나님은 아담의 반역을 그대로 벌하여 죗값대로 갚기로 하지 않으셨다. 죗값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드러내기로 하셨다. 더 깊은 사랑을 나타내기로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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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비도제일장로교회July 06, 2025 하나님의 심판
    [하나님의 심판(창3:8-19)]하나님은 반역자들에게 즉각 오시지 않았다. 그들의 범죄를 중단시키기 위해서 오시지도 않았다. 모든 일이 결말나고서 하나님은 범죄자들을 부르러 오셨다(창3:7-8). 범죄자들은 이미 반역을 다 수행하고 범죄의 결과에 대해서 조처하였다. 반역자들은 죄인의 신분 상태에 있었다. 그리고 범죄자의 심리를 형성하고 있었다. 또 반역에 대해 심문과 심판을 받을 것을 대비하고 있었다. 그들은 반역에 대해 땅에 꺼꾸러지는 회개를 할 마음을 갖고 있지 않았다. 잘못을 철저히 자백하고 끝도 없는 사랑의 용서를 구할 마음을 전혀 갖지 않았다. 책임회피만 가득하여 자기의 범행에 대한 책임을 다른 쪽에 넘겼다. 이에서 나아가 그들은 궁극적인 책임을 창조주에게 돌렸다(창3:12-13). 반역사건 이후에는 책임회피와 변명이 인간의 본성이 되었다. 하나님은 범죄자들을 심판하시되 언약체결 시 약속하신 죽음을 당장 집행하지 않으시고 유보하셨다. 그리고 사랑의 큰 계획을 알리셨다. 거룩과 공의의 법대로 엄한 징벌을 하신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하나님이 본래 사랑이셨음을 알리셨다. 그리하여 범죄한 인류를 다시 하나님에게로 돌려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로 삼을 것임을 밝히셨다. 곧 구원계획을 밝히셨다. 그러나 범죄자들은 죗값을 따라 죽어야 함을 선언하셨다. 영생과 영원한 행복이 아니라 육체적 삶으로 생을 마감해야 할 것을 밝히셨다. 그리하여 인류세계에 죽음이 불변의 법칙으로 세워졌다(창3:17-19).[범죄자들을 소환하심(창3:8-19)]하나님은 범죄한 아담과 하와를 부르셨다. 범죄자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자 양심의 큰 가책을 받았다. 죄책의식이 그들의 전 조직을 누르고 있었다. 그들은 죄책의식으로 두려웠다. 죄책의식과 하나님의 형벌에 대한 공포가 그들을 무섭게 누르고 있었다. 언약의 하나님 여호와가 범죄한 백성에게로 오셨다. 여호와가 가까이 오심을 감지하고 범죄자들은 나무 가운데 숨었다. 여호와 하나님을 피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직감하였다. 그러나 범죄자의 심리를 따라 본능적으로 몸을 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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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비도제일장로교회June 29, 2025 인격적 존재의 행동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방식을 예정으로 오해함-2
    [인격적 존재의 행동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방식을 예정으로 오해함-2]   하나님의 주권에 의한 예정을 크게 강조한 신학자들은 하나님이 인격적인 존재들을 다루시는 방식을 전혀 고려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예정을 교리로 공식화하여 죄와 반역행위까지도 하나님의 예정에 넣었다. 이런 예정 교리의 공식화로 모든 것을 설명하기는 쉽다. 그러나 범죄를 예정에 넣으므로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사역을 유희화하는 신학적 경향을 나타내게 되었다. 예정을 반대하고 인간의 자유의지만 강조하는 신학자들도 예정문제를 자유의지를 절대화한 방식으로 제시하므로 하나님을 무력한 신적 존재로 만들었다. 인간의 모든 일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결정과 작정과 상관없이 인간의 자유의지만 절대시하여 자유의지를 처음과 나중으로 규정하였다. 오히려 자유의지를 거의 신적 자리에 두거나 그보다 더 높게 보았다. 역사의 진행에 있어서 모든 결정의 최종 주도권은 다 인간의 자유의지가 갖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인간의 자유결정에 종속시키고 자유의지의 처분만 바라도록 만들었다. 하나님은 무슨 결정도 할 수 없고 설혹 결정하고 일을 이루었더라도 사람의 자유의지의 결정과 판정을 기다려야 한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셔도 인간의 허락과 찬동 없이는 아무것도 하실 수가 없게 되었다. 하나님은 무능한 하나님이어서 하나님이실 수 없고 언제나 방관자로 서 계시는 것으로 만들었다. 자유의지를 강조한 신학자들을 이런 점을 인지하고 은혜의 도움을 받아서 자유의지가 결정하는 것으로 조금은 수정하였다. 그래도 자유의지가 궁극적으로는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으로 규정하였다. 알미니안 교회 특히 감리교회에서는 자유의지에 대한 강조가 극단으로 나아갔다. 자유의지가 일을 결정하고 실행할 때 구원은혜의 도움을 입어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은혜의 도움으로 결정한다고 가르쳤다. 이런 가르침은 자유의지와 일반은혜가 인간 자체의 능력임을 암시하고 있다. 자유의지를 강조한 신학자들도 하나님의 인격적인 피조물들을 다루시는 방식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예정교리만을 절대 반대하고 자유의지를 절대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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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비도제일장로교회June 21, 2025 인격적 존재의 행동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방식을 예정으로 오해함
    [인격적 존재의 행동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방식을 예정으로 오해함]   하나님은 사람을 인격체로 창조하셨다. 사람을 인격체로 창조하셨다는 증거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또 모양대로 지으셨다는 선언이다(창1:26-27). 하나님이 사람을 자기의 형상대로 지으셨다는 것은 사람을 인격체로 지으심을 말한다. 창조주 하나님은 사람을 인격체로 대하시고 존중하신다. 하나님이 사람을 인격적으로 대하신다는 것은 그 피조물이 인격적인 결정을 하고 그 결정대로 행동할 때 그 결정과 행동이 부당해도 막지 않으시는 것을 말한다. 자기의 인격적인 결정으로 행동하는 것이므로 하나님은 인격체의 결정을 존중하셔서 그 결정을 허물어 내리지 않으신다. 곧 그 행동을 막지 않으신다. 아담과 하와가 유혹자의 유혹을 따라 선악과를 먹고 언약을 파기하고 하나님 섬김을 거부하기로 하였다. 그때도 하나님은 그들의 행동을 막지 않으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범죄 후에 아담과 하와를 심판하셨다. 하나님은 그들의 행동이 다 끝난 후에(창3:6-8) 그들의 행동을 심판하셨다. 구약에서 여로보암이 왕이 되어 우상숭배를 결정하고 실행할 때 하나님은 여로보암의 결정과 실행을 막지 않으셨다(왕상12:25-33). 여로보암 이후 북쪽 이스라엘의 왕들이 여로보암을 따라 우상을 섬기고 그것들에게 분향하여도 하나님은 그들의 결정과 행동을 막지 않으셨다(왕상15:25-왕하24:20).신약에서도 가롯 유다가 자기의 선생이요 주를 팔려고 할 때도 주 예수는 그의 결정과 행동을 막지 않으셨다(마26:14-15; 막14:10-11; 17:23; 눅22:3-6,21-22). 하나님은 피조 인격체들의 자유로운 결정과 행동을 결코 막지 않으신다. 그들이 인격체로서 결정하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이런 인격체들의 결정과 행동을 막지 않으신 것을 신학계에서는 예정으로 격상시켰다. 하나님이 인격체들의 결정과 행동을 막지 않으시고 그대로 진행되도록 놓아두심을 하나님의 예정으로 정한 것이다. 하나님은 전지하시므로 사람이 범죄할 것을 다 아시면서도 막상 그런 것을 결정하고 실행할 때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도 않으시고 막지 않으셨다. 그래서 사람의 결정대로 일이 일어났다. 이렇게 제재하지 않으시고 막지도 않으셨으므로 하나님이 예정하신 일이라고 단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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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7
    오비도제일장로교회June 13, 2025 죄가 하나님의 예정에 드는가?
    [죄가 하나님의 예정에 드는가?]하나님이 사람과 언약을 맺으시어 자기의 백성으로 삼으시므로 인류역사가 시작되었다. 역사의 진행이 오래되지 않아서 하나님의 창조경륜을 무너뜨리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은 창조주 하나님을 배반한 반역사건이었다. 이 반역행위로 인류는 죽음으로 작정되었고 하나님은 자기의 백성을 잃으셨다. 하나님을 섬김으로 영생과 영광으로 작정된 백성이 죽음과 형벌로 돌진하게 되었다.이 큰 범죄가 피조물의 자유의지의 결정으로만 일어났느냐, 아니면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가 있어서 그 작정대로 일어났느냐? 해결할 수 없는 이 신학적 문제에 대한 토론이 교회에서 많이 일어났다. 특히 개혁신학에서는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므로 하나님의 예정에 반역사건을 넣었다. 하나님은 모든 일을 하실 때 미리 작정하고 또 계획하고 일하시기 때문에 첫 인류의 반역사건도 하나님의 예정 속에 들어 있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인류의 첫 범죄사건이 예정되었다고 주장하면 생기는 큰 난점은 하나님을 죄의 장본인으로 혹은 시발자로 만든다는 점이다. 반대로 인간의 자유 결정으로 큰 범죄가 일어났다면 하나님은 첫 사건에 방관자로 계셨느냐 하는 문제이다. 개혁교회 안에서도 알미니우스를 따르는 교회는 예정을 반대하고 자유의지를 강조하였다. 따라서 알미니우스를 따르는 교회들 가령 감리교회, 복음주의 교회 등도 예정을 반대하였다. 인간의 자유의지와 하나님의 예정간의 관계를 논하여 변증이 시도되었다. 아브라함 카이퍼는 예정 안에서 자유의지를 설명하려고 하였다. 하나님의 예정과 자유의지 간에 연관이 있겠지만 자기로서는 둘의 관계를 해명할 수 없다고 하였다. 교회는 처음부터 거룩 때문에 죄와 연관시킬 수 없다고 하였다.[벨까우어의 죄와 예정의 인과적 연결 거부]최근에 벨까우어는 첫 범죄를 하나님의 예정에 넣는 것을 극력 반대하였다. 죄를 예정에서 인과율적으로 도출할 수 없다고 제시하였다. 죄의 기원 혹은 악의 기원을 창조와 창조주에게서 도출할 수 없다고 하엿다. 죄는 생소하여 기원문제를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죄는 시작만 갖지 기원은 없다고 하였다. 곧 죄는 하나님에게서 기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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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6
    오비도제일장로교회June 10, 2025 자유의지는 타락을 정당화하는가?
    [자유의지는 타락을 정당화하는가?]인간이 자유의지가 없도록 창조되었다면 죄가 없었겠는가? 인간이 자유의지가 없으면 인격이 아니다. 곧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다. 자유의지는 불순종을 정당화하지 않고 선악과는 죄를 촉발시킨 것이 아니다. 자유의지는 순종의 자유를 뜻한다. 자유의지는 죄지을 핑계가 되지 못한다. 자유의지 자체는 악을 결정할 근거를 말해 주지 않는다. 단지 자유의지에 의해 자기결정으로 타락할 수 있다. 사람은 인격적인 결정으로 선택한다. 자유의지는 외부의 강제나 명령이나 설득 없이 스스로 결정하는 능력이다. 선악의 선택은 사람이 할 수 있다. 자기의 판단으로 선택한다. 선택의 결정은 인간 자신이 한다. 그러므로 선택은 자유이다. 나를 대신해서 다른 존재가 결정을 해주지 않는다. 그런 경우에는 나 자신이 동의하지 않거나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타인의 결정을 받아들이는 것은 인격의 존엄의식에 거슬린다. 타인의 결정을 강제에 의해 받아들이는 것은 자기인격에 대해 모독감을 느끼게 한다. 그것은 자기의지와 자기결정의 법칙에 거슬리기 때문이다. 유혹자가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였다. 그러나 결정은 사람의 몫이었다. 유혹 후에 유혹자가 아담과 하와의 자유로운 결정에는 동참하지 않았다. 결정은 두 사람이 하도록 남겨졌다. 자기의 의지로 결정하였다. 그러므로 결정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아담과 하와에게 있었다. [죄는 하나님의 창조에서도 하나님 자신에게서도 비롯될 수 없다]하나님 자신 안에 악과 죄의 기원을 두는 것은 논의의 모순이다. 하나님 안에 악이 있다는 전제 자체가 모순이고 불가한 일이다. 악과 죄는 피조인격체에만 있다. 영들과 인간에게 악이 있다. 그러나 그들의 존재의 시작부터 그런 것이 아니다. 그들 존재의 일정한 시간이 경과한 후에 악이 생겼다. 이 사실은 창조부터 그런 것이 아님을 웅변한다. 죄는 인격체의 인격적인 결정에서 비롯된다. 하나님 안에 악 혹은 죄를 두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통상 악을 선의 결핍으로 정의하고 이해해 왔다. 하나님에게 이것을 적용하면 하나님이 악을 갖는다는 것은 그가 선하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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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5
    오비도제일장로교회June 01, 2025 죄는 인간의 인격에서 기원한다
    [범죄는 인간의 구조에서 가능한가?]죄가 인간의 구조에서 왔다면 죄를 쉽게 설명할 수 있다. 로마교회는 범죄의 가능성을 인간의 구조 곧 합리적 영혼과 비합리적 육체의 결합에서 찾는다. 합리적인 영혼과 비합리적인 물질이 합쳤으므로 서로 조화할 수 없었다. 로마교회의 가르침에 의하면 처음 창조는 완전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창조주는 두 모순되는 요소들 곧 물질과 영을 조화하도록 하기 위해서 추가적 은사를 베푸셨다. 추가적 은사가 원시의이다. 그러나 추가적 은사는 완전한 해결책이 못 되었다. 그러면 둘은 조화하지 못하여 육체가 욕망을 발휘하여 합리적인 이성에 종속하지 않을 것이다. 한 쪽의 욕망이 너무 심하여 합리적인 결정과 조치에 함께 가지 않으면 둘은 분란을 겪고 전쟁을 치를 것이다. 로마교회는 범죄의 가능성이 인간의 구조 자체에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선한 창조를 이루셨으므로 하나님의 창조의 구조 자체에서 죄를 도출할 수 없다. 전능하신 창조주는 물질과 영혼을 아무런 충돌이나 분쟁 없이 조화시키셨다. 둘은 완전한 하나님의 창조이므로 창조의 시작에 둘 사이에 부조화와 분쟁을 생각할 수도 없다. 따라서 범죄 혹은 반역은 두 이질적인 인간의 구성요소들 때문에 일어날 수 없다. 즉 하나님의 선한 창조 자체에서는 범죄라든가 반역을 생각하기가 불가능하다. [죄는 인간의 인격에서 기원한다]인격은 자유의지와 자기결정의 주체이므로 자기판단으로 선악을 선택할 수 있다. 죄는 인간의 본성 자체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고 인격적 결정에 의해 가능하다. 비록 유혹을 받았지만 아담과 하와는 스스로 결정하였다. 그들은 선악판단과 결정을 창조주 하나님에게서 자신에게로 옮기기로 하였다. 하나님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기가 스스로 선악결정을 하기로 하였다. 선악결정을 스스로 하는 것은 편리하고 쉬운 것으로 보였다. 모든 것을 하나님에게 물어보고 하나님의 뜻에 매여서 살기보다 자기가 결정한 것을 선악으로 삼기로 작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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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4
    오비도제일장로교회June 01, 2025 범죄의 가능성의 문제
    [범죄의 가능성의 문제]   창조세계에 어떻게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 가능할 수 있었는가? 하나님의 선한 창조세계에 범죄 혹은 반역이 가능한가? 물질에서 범죄가 나올 수 있었는가? 아니면 사람이 합리적인 영혼과 몸 곧 물질로 이루어져 두 구성요소가 서로 모순되기 때문에 조화할 수 없어서 범죄가 나왔는가? 아니면 사람이 처음부터 악하게 창조되어서 범죄가 가능할 수 있었는가? 닛사의 그레고리오스의 가르침처럼 의지에 악을 섞음으로 선에서 돌이켜 악으로 향하였는가? 선한 하나님의 창조에 어떻게 창조주를 대항한 반역이 가능할 수 있는가? 하나님이 최고의 영예와 영광을 부여하고 최고의 지위를 허락하신 존재가 창조주에 반항하여 반역죄를 저지를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가? 그 이유는 전적으로 인격에서 찾아야 한다. 인격은 자기결정과 자기의식의 주체이다. 자기의식의 고양에 의해 하나님의 자리까지도 바랄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더구나 자기고양을 최고목표로 삼는 뻔뻔함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에게 최고앙양과 지위를 확보하기를 열망하는 성향을 갖고 있다.   범죄는 인격체에서만 가능하다. 인격체는 자기 이름을 위해서는 불가능도 시도한다. 도저히 하면 안 되는 일도 시도하고 이루어낸다. 사람은 선하고 의로운 존재로 창조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한 뜻을 따라 살고 행하였다. 사람은 인격으로 창조되었으므로 창조주를 대항하고 반역하여 하나님의 자리도 차지할 생각과 결정을 할 수 있었다. 닛사의 그레고리오스는 반역이 인간의 의지에서 나왔다고 하였다.   사람이 인격이므로 악을 결정할 수 있었다. 피조물이 하나님의 결정과 반대되게 선악을 결정하면, 하나님의 선악결정과 정반대가 되어 반역이 된다. 피조물이 하나님의 자리에 서서 선을 결정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결정을 대치하는 것이므로 반역이 되어 악이 된다. 범죄가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이 인격이므로 반역을 결정하고 이루어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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