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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비도제일장로교회August 02, 2026 [홍수로 처음 세상을 심판하심(창6:11-7:22)]
    [홍수로 처음 세상을 심판하심(창6:11-7:22)]처음 죄악은 그 본성대로 역사하여 온갖 악들을 생산하였다. 죄악은 크게 강성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악하게 만들었다. 사람의 출생이 증가함에 따라 죄악도 더 많아지고 강력해졌다. 사람들의 모든 계획과 생각은 다른 사람들을 해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창6:7).폭력이 사람들의 생활의 방식이 되었다(창6:13). 그러므로 사람들이 서로의 생존을 용납하지 않았다. 오직 폭력으로 자기의 생존을 지키고 다른 사람의 생존을 박탈하였다. 즉 자기의 생존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죽이는 것이 일상의 일이 되었다. 온 땅이 부패하고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다고 하였으니(창6:11-12) 사람마다 폭력으로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살육과 분쟁이 사람이 사는 고을마다 가득하게 되었다. 이 방식으로는 인류의 존속이 불가능할 만큼 되었다. 또 힘 있는 사람들이 모든 생존의 수단을 독점하였다. 생존수단을 확보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생존을 용납하지 않고 죽게 만들었다. 땅은 저주를 받아 처음 창조된 상태에서만큼 곡식과 열매를 내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자연히 생존수단을 차지하기 위해 늘 분쟁하고 남의 것을 빼앗고 도적질하였다. 폭력 앞에 법은 지켜질 수 없는 법이다. 또 다른 생명체들에게도 폭력을 가하여 폭력이 세상의 질서가 되었다. 따라서 동물세계에서도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잡아먹는 일이 생존의 방식이 되었다. 폭력 혹은 포악이 생존방식이 된다면 살아남을 사람들의 수가 늘 줄어들게 된다. 그러면 인구의 감소속도가 출생으로 인한 증가를 넘어서서 인류의 존속이 불가능하게 된다. 또 인류의 생존방식 때문에 늘 폭력이 행사되어 죽고 죽이는 일이 끊이지 않게 되었다. 죄악의 번창과 계속은 창조주의 섭리를 궤도에서 이탈하게 하였다. 죄악은 날이 갈수록 더해지므로 인류 종족들의 죄악이 극에 달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인류를 죄악대로 벌하여 멸하기로 하셨다. 온 인류와 땅의 동물들을 다 멸하기로 하셨다(창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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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비도제일장로교회July 26, 2026 문명을 이루도록 하심
    [문명을 이루도록 하심]땅을 파서 식량을 생산하는 일은 자연히 문명세계를 이루게 되었다. 창조된 대로 자연에서 그전처럼 살 수 없게 된 사람은 자기의 세계를 손으로 건설하여 문화를 이루게 되었다. 그리하여 사람의 세상은 점차 자연에서 문화로 나아갔다. 땅을 파서 먹거리를 생산하게 된 세상에서는 학문이 발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땅을 쉽게 파기 위해서 쉬운 방도를 구할 수밖에 없었다. 삶의 방식을 개선하기 위해서 방법을 늘 연구하므로 학문이 일어나게 되었다. 사람은 자연히 자기 주변의 환경을 탐구하게 되었고 땅과 주변사물들을 연구하여 법칙과 성질을 밝히게 되었다. 사람은 힘든 노동 때문에 휴식을 바라게 되었다. 이 욕구는 몸과 마음을 쉬게 하는 육체적인 휴식뿐만 아니라 좀 더 나은 휴식을 추구하게 만들었다. 휴식에 대한 욕구가 예술을 발달하게 하였다. 예술로 목과 마음을 쉬게 할 뿐만 아니라 자기의 생활을 더욱 풍성하게 하였다. 풍성한 예술을 발흥시키므로 사람의 사회가 문화사회가 되었다. 노동이 인류 생존과 문화발달의 기본이 되었다. 이처럼 하나님은 사람으로 땅을 파서 살게 하므로 창조를 계발하여 창조 비밀을 캐내게 만드셨다. 땅을 파서 살아야 하므로 자연히 하나님의 창조를 탐구하고 연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처음 세상을 심판하심(창6:5-8:19)]하나님은 노아홍수로 처음 세상을 심판하시어 죄의 값이 죽음임을 분명하게 인류의 양심에 각인하셨다. 그 후에도 인류의 종족들에게 심판을 집행하여 큰 죄악의 창궐을 막으셨다. 하나님은 처음 세상을 물로 멸하심은 멸망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죄를 본성으로 가진 인류가 완전한 범죄로 멸절되지 않고 존속하게 하신 섭리적인 조치였다. 사람이 범죄할 경우 심판하여 죽음에 이르도록 정하셨지만 (창2:16-17), 실제로 범죄하였을 때 즉각 죽음에 이르게 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하나님은 사람의 반역을 참으시기로 하셨다. 그러나 사람의 죄악을 방면하시는 것은 아니었다. 범죄한 사람들을 용납하시고 그들의 생존을 보장하시기로 작정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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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비도제일장로교회July 24, 2026 땅을 파서 살게 하므로 죄악에 전심하지 못하게 하심(창3:17-19)
    [죄의 억제 조치]하나님은 인류의 범죄를 자기의 더 큰 영광과 사랑을 나타내는 계기로 삼기로 하였다. 하나님은 반역한 인류를 더 큰 사랑의 역사로 돌이켜 다시 자기의 백성으로 삼기로 하셨다. 그러기 위해 하나님은 인류가 죄로 멸절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기로 하셨다. 이 조치로 인류가 멸절되지 않고 살아남아 하나님의 구원에 동참할 수 있게 하셨다. 창조주는 섭리주로서 여러 조치를 위하셨다. 죄의 억제 조치로 하나님은 여러 방책들을 미련하셨는데 그 첫 번째가 바로 사람으로 땅을 파게 하신 것이다. [사람으로 땅을 파서 살게 하셨다(창3:17-19)]창조주 하나님은 범죄자들로 당장 죽게 하지 않으시고 그들의 생존을 보존하기로 하셨다. 땅을 파서 먹는 것을 해결함으로 생존하게 하셨다. 첫 인류는 하나님이 지으신 동산에서 많은 과실과 채소로 배풀리며 평안하게 살았다. 이렇게 편안하게 살 때 그들은 반역하였다. 하나님은 더 큰 반역을 막기 위해서 사람으로 땅을 파서 살게 하셨다. 하나님의 밭에서 직접 배불리 먹으며 자유를 누리던 데서 땅을 파서 자기들의 생존을 책임지게 하셨다. [땅을 파서 살게 하므로 죄악에 전심하지 못하게 하심(창3:17-19)]하나님은 사람으로 허리가 구부러지도록 땅을 파게 하셔서 죄악에 전심할 수 없게 하셨다. 당장의 생존이 자기들의 손에 달리게 함으로 죄악을 꾀하고 범할 시간적 여유를 갖는 일이 쉽지 않게 되었다. 힘써 땅을 파서 곡식과 양식을 생산하지 않으면 자신과 가족의 생존을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생존문제가 절박하면 죄악을 고안해내어도 실행할 힘과 여유가 없어지게 된다. 창조주는 사람들의 생활방식을 규정하시어 죄악에 의해 종족들이 사라지거나 멸절되지 않게 하셨다. 생존문제가 절박하기 때문에 죄악을 위해 시간과 힘을 마련할 수 없게 되어 죄악에 탐닉할 수 없게 하셨다. 사람은 생존이 절박해도 조금만 여유가 있으면 곧장 죄악을 고안하고 실행하려고 노력한다. 죄의 욕망은 사람에게 늘 있으므로(창4:7)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죄악을 고안하는 일은 중단되지 않는다. 그러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 땅을 파서 수고해야 하는 당위가 작용하여 죄악의 창궐을 막도록 조치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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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비도제일장로교회July 12, 2026 우상숭배의 길
    [우상숭배의 길]사람은 종교적 행위를 하지 않아도 이미 종교적 경지에 들어가 있다. 자기를 최종 목표와 최고 가치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창조주 하나님을 버렸으므로 자기 존재와 자기 가치에서 최고목표를 발견한다. 이것은 이미 종교적 경지에 이른 것이다. 사람은 자기의 유한성을 의식한다. 그래서 자기보다 더 크다고 인정되는 존재에 의존하려는 강한 성향을 갖는다. 인간의 의존성향을 실현하기 위해 사람은 창조주 하나님에게로 돌아가지 않는다. 사람은 다른 영적 존재와 구체적인 피조물에게로 주의를 향한다. 그리하여 피조물들 중 하나나 둘 혹은 몇을 골라 신으로 섬긴다. 그리고 그 신들에게 대단한 권세와 광채를 부여하여 죄고 존재로 삼는다. 이렇게 조성한 신들에게 최고 영광과 존귀를 돌리고 그들을 경배한다(롬1:25). 이렇게 함으로 사람들은 자기들의 종교적인 의무를 다한 것으로 여긴다. 사람들은 피조물들을 신들로 섬기는 우상숭배를 하면서 성적 범죄를 병행한다. 피조물을 신으로 섬기는 것이 헛것임을 의식하므로 이 허무함을 성적 범행으로 달랜다. 즉 육체적 쾌감에서 허무함에 대한 위안을 얻는다. 그리하여 우상숭배와 성적 범행은 언제든지 병행하였다. 우상숭배가 성한 곳에는 성적 범행도 함께 번창한다. 창조주를 배척한 후에 인류 종족들은 어떤 행태로든지 우상을 갖고 있다. 사람들은 종교적인 예배의 형식은 아니어도 우상을 섬기고 있다. 그것이 돈이든지 성적 쾌락이든지 지식의 추구이든지 아니면 구체적인 형태를 띠는 물건이든지 다 우상을 갖고 거기에 몰두한다. 곧 탐욕의 대상 (엡5:5)에 몰두하면 그것이 우상숭배가 된다. 이렇게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가기 전에는 언제나 우상을 갖고 있고 우상숭배자로 남는다. [범죄의 일상화]모든 사람은 반역자이기 때문에 그 마음에 하나님을 미워하고 적대심을 갖고 있다. 따라서 행동하고 결정할 때 마음속으로부터 하나님의 법에 어긋나는 것을 택하고 좋아한다. 사람은 죄의 범을 따라 행동하고 결정한다. 그리하여 언제나 죄를 택하고 선을 택하지 않는다. 죄가 생활과 분리되지 않는다. 죄가 완전히 생활화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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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6
    오비도제일장로교회July 05, 2026 인간의 자기추구
    [육적 쾌락과 만족이 삶의 최상의 목표가 됨]   사람은 평생 손의 수고로 땅을 파도 자기의 배를 채우고 생존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 되었다.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므로 땅을 파도 생존이 쉬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창3:17-19).사람은 자기 배를 채우게 되면 쾌락을 원한다. 쉬고 평안하면서 육체적 즐거움을 바란다. 사람은 한번 맛본 쾌락을 즐기고 쾌락에 탐닉한다. 여러 종류의 쾌락이 있지만 일차적 추구의 목표는 육체적 쾌락이다. 자기의 능력이 닿는 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쾌락을 즐기고 추구한다. 그리하여 인류 종족들은 자기들 나름대로 온갖 종류의 쾌락을 고안해내었다. 사람은 육체적 쾌락과 만족을 위해서 돈을 벌고 수고한다. 능력이 되는대로 쾌락의 범위와 질을 높인다. 쾌락의 추구를 통하여 인간은 자기를 추구한다.   [인간의 자기추구]   사람의 인격은 하나님의 인격에 비추어서만 바른 인격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남으로 사람이 인격을 바르게 구성할 표준을 상실하였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표준으로 삼고 절대가치로 삼게 되었다. 사람은 가장 소중한 것이 자기 자신이 되었다. 자기의 존속과 함께 자기의 존재를 가장 귀중한 가치로 삼았다. 사람이 추구하는 모든 것들의 최종 목표는 결국 자기 자신이 된다. 사람은 영적 존재로서 자기과시와 자기인정에서 모든 가치를 발견한다. 그리하여 자기과시와 인정받음을 위해서 일생을 산다. 사람이 자기를 최종 목표로 삼는다면 이미 종교의 경지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자기가 정한 일에서 큰 성공을 거두려고 하는 것도 다 자기과시에 근거한다. 자기 욕구충족의 단계를 넘어서 과도하게 돈을 버는 것도 자기과시에 근거하고 있다. 이 방식으로 사람은 자아만족을 누리고 괘감을 즐긴다. 이런 방식으로 사람은 자기실현을 이루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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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비도제일장로교회June 21, 2026 육적 생존을 위해서 진력(창6:3)
    [죄로 육신이 된 인간]사람이 처음 창조되었을 때는 영혼을 가진 육체가 아니라 생명의 혼이었다. 생명의 혼(창2:7) 혹은 생령은 육체에 생명의 혼을 가진 정도가 아니라 혼 혹은 영의 방식으로 사는 존재를 말한다. 비록 아담은 육체를 가졌어도 그 존재방식은 완전히 영적 존재였다. 그러나 하나님을 반역한 후부터는 그의 존재방식이 완전히 바뀌었다. 더구나 언약의 법에 의해 아담의 죄과를 전가 받은 모든 후손들의 존재방식이 완전히 바뀌었다. 죄과의 전가로 죄인이 되었을 때뿐만 아니라 죄짓는 것을 생활의 방식으로 삼았다. 아담과 그의 후손들은 죄 때문에 육체 혹은 육신이 되었다. 삶의 방식이 완전히 육체의 방식이 되었고 영적 존재방식으로 살지 못하게 되었다. 죄로 사는 것이 곧 생활의 법이 되었다. 그리하여 더 이상 혼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육체적 방식으로 사는 육신이 되었다. [육적 생존을 위해서 진력(창6:3)]사람은 본래 영적 존재로 창조되었다. 비록 육체로 살지만 영적 존재여서 하나님을 모시고 살도록 조성되었다. 그러나 범죄하여 육신이 됨을(창6:3) 사람의 삶이 육체적 생존을 전부로 삼게 되었다. 영적 영역은 부차적인 것이 되어서 필수불가결한 것이 될 수 없게 되었다. 모든 주의와 관심과 노력이 육체적 존속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먹고 살아남는 것이 사람의 활동의 최우선 순위가 되었다. 자기 손의 수고를 통해서 먹을 것을 벌어야 하므로 먹는 것을 위해서 사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되었다. 육체적 생존이 삶의 전부가 되고 영적인 것은 의식의 영역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하나님을 섬기고 사는 일은 육체적 생존이 이루어진 후에나 가능하고 타당한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이런 생존의 방식은 동물들의 생존방식과 별로 다르지 않게 되었다. 사람은 바로 육체가 되었다. 그리하여 사람과 육신은 일치되었다. 육체의 존속이 사람의 사는 전부가 되었다. 사람은 먹고 마시는 것으로 시작하고 먹고 마시는 것으로 삶을 마감한다. 이에서 나아가 자기의 분신의 연속을 위해서도 진력하게 되었다. [육체적 분신의 연속을 위해 진력]아담이 범죄함으로 죽음이 확정되었다. 사람들은 영생에 이름에 불가능함을 내적 본심에서 절감하였따. 그리하여 자기의 분신을 확장하기로 결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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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비도제일장로교회June 21, 2026 육체적 죽음(창3:19)
    [육체적 죽음(창3:19)]죽음은 사람이 만나는 가장 큰 재앙이다. 죽음을 재앙이라고 하는 것은 죽음이 인간에게 자연적인 것이 아니고 본성에 고유한 것도 아님을 뜻한다. 사람은 죽도록 창조되지 않았음을 뜻한다. 사람이 범한 죄 때문에 죽음이 부과되어 본성적이 되었다. 범죄 이후에는 모두가 죽도록 작정되었기 때문이다. 죽음은 육체적 생명의 끝남을 뜻한다. 죽음으로 사람의 생명이 종결되고 멸절되기 때문이다. 사람은 죽음에서 자기 인격의 허무성과 비참함을 느낀다. 사람도 짐승들의 존재의 수준으로 격하되고 동일하게 취급받기 때문이다(전3:19). 즉 죽음으로 인간이 다른 피조물과 동일한 운명으로 격하된다. 사람이 다른 피조물과 아무 차이가 없어져서 동일하게 무로 돌아간다. 사람은 죽음에서 자기의 일생 동안 사역이 허무였다고 절감한다(전5:15). 자기의 존재가 사라지기 때문에 허사라고 여길 뿐이다. 죽음이 사람의 인격과 존재를 무로 돌리므로 사람은 죽음을 싫어하고 격렬하게 대항한다. 그리하여 할 수 있는 대로 자기의 생명을 연장하려고 모든 노력을 다한다. 그래도 죽음을 피할 수 없음을 절감한다. 하나님은 생명의 박탈인 죽음을 죄에 대한 벌로 정하셨다. 사람은 죽음으로 피조물들을 다스림이 끝나고 육체적 영광과 행복도 매장된다. 그는 모든 사람의 기억에서도 지워진다(전9:5). 결국 죽음은 사람의 존재를 완전히 해소한다. [신자의 경우]죽음 보편적이므로 믿는 사람에게도 예외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신자들에게 육체적 죽음은 근본형벌이 아니다. 신자에게 죽음은 범죄를 제약하여 성화에 이르게 하는 섭리적 조치이다. 육체적 죽음은 겸손과 인내와 징계의 법으로 활용되어 구원에 이르게 한다. [영원한 죽음: 불신자의 경우]육체적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인격과 존재가 완전히 멸절되는 것이 아니다. 육체적 죽음으로 사람이 산자의 세계에서 완전히 분리되고 단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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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비도제일장로교회June 07, 2026 영적 무능력
    [죄에 대한 형벌: 죽음(창2:17; 롬1:32)]사람은 죽도록 창조되거나 출생한 것이 아니다. 영혼만이 영생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도 무한히 살게 조성되었다. 카이퍼(네덜란드 수상이자 신학자)의 말대로 사람은 죄의 상해가 가해지지 않았으면 영구히 살 수 있게 조성되었다. 사람이 죽게 된 것은 범죄함으로 정해졌다. 죄에 대한 형벌로 죽음이 부과되었다(창2:17). 사람에게 임한 형벌은 육체적인 죽음과 영원한 죽음으로 이루어진다.   [영적 죽음]영적 죽음은 아담이 반역을 거행하여 하나님과 단절되었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육체적 생명은 930년간 지속되었지만 그의 마음에 하나님을 상실하므로 영적 죽음은 이미 아담의 삶에서 실재가 되었다.   [영적 무능력]영적 죽음은 신 형상의 은사들의 상실과 자유 결정의 힘을 박탈당함으로 나타났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의 인격상을 반사할 수가 없다. 이미 육신이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과 그의 구원사역을 받아들일 능력이 전혀 없다.   [자유의지는 시민선의 영역에만 국한한다]인간의 의지는 타락 상태에서도 자유이다. 즉 원하고 싫어하는 능력으로서는 자유이다. 인간의 의지는 일반은총을 힘입어 시민선 곧 시민윤리는 행할 수 있다. 그러나 시민선도 자기 추구에 의해서 충동되고 시행된다. 시민선의 영역에서라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법을 이루기 위하여 선을 행할 수가 없다.   [자유의지는 구원은혜에 있어서 자유를 갖지 못한다]영적인 일들에 있어서 의지는 자유가 아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으며 그의 구원사역을 받아들이는 것은 자유의지로 할 수가 없다. 반역 후에는 인간의 의지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반대되는 것만을 즐거워하고 행한다. 영적 일에서는 의지는 자유를 행사할 수 없다. 인간의 의지는 악을 택하는 데만 자유한다. 즉 큰 악을 택할 것인가, 작은 악을 택할 것인가에는 자기결정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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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비도제일장로교회May 31, 2026 [죄의 자리: 사람의 인격의 중심 곧 심장]
    [죄의 자리: 사람의 인격의 중심 곧 심장]죄는 사람의 인격 혹은 심장에 자리한다. 죄는 인간 자신에서 나오고 다른 곳에서 오지 않는다. 인간 자신 혹은 인격이 죄가 자리한 곳이다. 죄는 사람의 심장에서 나오고 신체에서 나오지 않는다. 죄가 사람의 심장 곧 인격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심장은 악이 끊임없이 생산되는 곳이다. 외부에서 악이 오기도 하지만 죄악은 인간의 심장에서 쉼 없이 생산된다. 형태를 달리해서 온갖 죄악을 늘 생산하는 것이 인간의 심장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심장 혹은 마음이 모든 죄악의 출처라고 해야 한다.사람은 죄를 욕망한다. 죄를 욕망하는 내 안에 죄가 자리한다. 사람은 자기의 인격적 결정으로 하나님을 반역하였다. 반역죄 후에는 반역의 성향이 사람의 인격에 자리한다. 타락 이후에 사람은 본성적으로 하나님을 싫어하고 거부한다. 처음 반역사건의 구조가 마음 판에 자리 잡아 나타난 현상이다. 처음 사람이 하나님을 반역하되 언약을 체결한 상태에서 모반하였다. 그 범죄 때문에 모든 사람은 언약주 하나님을 싫어하고 미워한다. 그리고 자기의 의식에서 하나님 생각을 제거하기를 원한다. 만일 언약주를 인정하면 언약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언약 파기의 책임 때문에 하나님을 싫어하고 미워하며 그를 피하려고만 한다. 생각에서라도 하나님을 만나기를 싫어한다. 사람은 출생 이후 본능적으로 하나님을 싫어하고 미워한다. 그것은 죄가 사람의 인격의 중심 곧 심장에 자리하고 있음을 뜻한다. 죄의 자리는 바로 사람의 심장 곧 인격의 중심이다. 사람은 의식적으로 하나님의 법을 싫어하고 마음에 두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법과 계명 대신에 죄의 법을 따르기를 좋아한다. 하나님의 법을 대신할 법을 고안해 낸다. 사람은 하나님의 법에 반대되는 판단을 하고 그에 따라 행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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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비도제일장로교회May 24, 2026 성령 훼방죄 (마12:31)
    [성령 훼방죄 (마12:31)]성령 훼방죄는 성령을 직접적으로 욕하고 훼방하는 죄를 뜻하지 않는다. 성령 훼방죄는 끝까지 복음진리를 부인하고 혐오하고 배척하는 죄여서 용서받지 못하는 죄를 말한다.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복음을 끝까지 부정하고 배척하는 행동이 성령 훼방죄이다. 성령의 직임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주 되심을 증거하는 것이다. 또 주 예수가 십자가에 죽고 부활함으로 세상을 구원하셨음을 증거하고 전파하는 것이 그의 직임이다. 성령은 이 복음 증거를 위해서 오셨고 다른 목적으로 오신 것이 아니다. 성령 훼방죄는 순전한 악의에서 복음을 배척하고 증오하는 것이다. 그냥 미워하고 배척하는 수준이 아니라 어찌하든지 복음을 박멸하려고 온갖 일을 한다. 이런 죄악은 회개와 용서가 전적으로 배제된다. 따라서 이 죄는 반드시 죽음에 이르게 한다. 그러나 이런 죄악도 회개하고 주 예수를 믿으면 용서받는다. 이 죄는 사람들의 마음에 그리스도를 유일한 구주로 알고 믿게 하는 역사를 대항하는 죄이다. 이 죄는 선택자에 의해서 범해지는 것이 아니라 유기된 자에 의해 범해진다고 말할 수 있다. 니체는 복음의 권세 아래 살았으므로 은혜의 역사를 경험했다고 본다. 그런데도 끝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배척하고 부정하였다.이런 성령 훼방은 바로 적그리스도의 역사라고 할 것이다. 이런 죄를 범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적용하지 않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에 죄용서의 가능성이 배제된다고 보아야 타당하다. 그러므로 성령 훼방죄를 짓는 자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이 죄를 계속한다.  [죄는 실체가 아님]창조된 모든 실체는 세계 내에서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창조된 것은 독립적으로 실재하는 실체이다. 죄는 그런 실체가 아니다. 그러므로 죄는 세계 내에 사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실체는 창조된 존재물이다. 죄는 실체가 아니다. 곧 죄는 창조된 본성이 아니다. 죄는 인간의 본성이 아니라 부수적인 것이다. 죄는 하나님이 창조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죄의 조성자도 아니고 죄의 원인도 아니시다. 죄는 전적으로 사람의 심성에서 비롯되고 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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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비도제일장로교회May 17, 2026 죽음에 이를 죄와 경미한 죄의 구분의 부당성
    [욕망의 생산]죄를 바라는 것부터 죄악이다. 그러나 죄의 욕망이 마음의 작용과 행동으로 죄를 감행한다. 외적 행동으로 욕망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마음으로 죄악을 반복하고 집행한다. 이 경우에도 죄악이 마음에 완전히 형체를 이룬다. 마음의 주저나 의지의 반대가 있어도 욕망이 강해지면, 욕망은 뜻을 이루기 위해 물리적인 행동을 하게 한다. 그래서 죄악이 완전히 범해졌다. 더 이상 사람은 죄악에서 돌이킬 수 없고 지어진 행동을 무효화할 수 없다. [욕망을 이루기 위한 계획들]욕망이 발동하면 그 욕망을 이루기 위한 계획들을 진행한다. 그 목표에 모든 주의를 집중하고 그것을 이룰 계획들을 고안한다. 그리고 욕망 충족을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방도를 최선의 방책으로 정한다. [행동을 함]욕망이 강렬하고 계획이 합당하다고 판단되면 행동을 한다. 이제 실제 행동을 하는 일에 아무런 의심이 일어나지 않게 된다. 욕망 성취가 최상으로 설정되었으므로 행동이 이루어진다. 행동을 하여 욕망이 성취되면 자기만족과 감동이 크다. 이로써 범죄의 모든 과정이 종결된다. [죄악의 완결]욕망은 자기충족을 위해 끝까지 역사하여 행동하였으므로 죄가 범해졌다. 욕망 충족이 이루어졌으므로 죄악은 완결되었다. 그리고 죄악이 장성하여 같은 범죄를 반복한다. 범행은 반복될 뿐만 아니라 범위가 확대된다. 범행은 죄의 본성대로 귀결을 가져오게 한다. 장성한 죄의 결과는 죽음이다. 결국 사람으로 앞당겨 죽음에 이르게 한다. [죽음에 이를 죄와 경미한 죄의 구분의 부당성]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의 행동과 생각들은 모두 용서받지 못하였으므로 영구히 정죄된다. 즉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들의 죄는 다 죽음에 이를 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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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9
    오비도제일장로교회May 10, 2026 본죄의 발생과정
    [본죄의 발생 과정]죄는 일정한 과정을 거쳐서 결실한다. 이런 죄의 발생 과정과 결실은 약 1:14-15에 잘 제시되어 있다. 죄는 처음 범죄처럼 유혹으로 시작한다.   [유혹 받음]유혹은 사람에게 죄짓도록 충동한다. 유혹은 밖에서만 오는 것 아니라 속에서도 일어난다. 욕망 때문에 유혹이 사람으로 범죄하도록 한다. 유혹은 자기의 욕망에서 시작한다. 사람이 자기의 욕망에 끌리어 죄를 원하고 죄를 지으면서까지도 욕망을 충족하기를 바란다. 사람은 육체적 존재여서 물리적인 세계에 살므로 물질적인 것들을 많이 필요로 한다. 그러나 사람이 물질적 동기로 유혹받는 것은 욕망 때문이다. [욕망의 발동]유혹으로 욕망이 발동한다. 욕망이 일어나 죄악의 생각이 들어 올 때즉각 배척하지 않고 심장에 수납하면 욕망이 수태된다. 욕망이 형체를 이루어 마음에 자리하면 그 욕망은 본성처럼 역사한다. 처음 욕망이 일어날 때 배척하지 않았기 때문에 마음에 자리를 가질 권리를 갖게 된다. 이제는 그 욕망이 싹이 나고 자라서 죄를 짓고 죽음에 이르게 되는 과정에 서게 된다. [욕망의 생산]마음에 자리 잡은 욕망은 본성대로 역사한다. 그리하여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작업을 시작한다. 욕망이 강해지면 의자가 끌려간다. 의지는 욕망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죄의 본격적인 시작은 의지의 동의가 있을 때 이루어진다. 그러나 통상 의지는 욕망에 끌려 따라가고 욕망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이렇게 욕망이 의지의 동의를 힘입어서 본격적으로 죄악을 생산하도록 역사한다. 욕망은 대단한 갈망을 일으켜서 외적으로 행동하여 죄악이 이루어지게 한다. 이렇게 욕망은 죄를 생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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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8
    오비도제일장로교회May 03, 2026 본죄: 부패와 전가된 죄
    [본죄]죄과의 전가와 육적 욕망은 모든 사람으로 죄짓게 한다. 아무도 죄짓는 데서 피할 수 없다. 인간이 스스로 죄를 원하고 죄짓는다. 외부의 강압에 의해서 죄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본성 내부로부터 죄를 원하고 죄짓는다. 언제든지 전가된 죄와 육욕이 사람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자기의 삶에서 행하는 모든 것은 죄를 구성한다. 하나님의 법에 어긋나게 살 뿐만 아니라 반역한 상태에서 모든 일을 행하기 때문이다. 죄는 창조된 인간의 본성이 아니다. 그러나 타락 이후에는 사람의 본성이 죄로 조직되었다. 죄된 본성은 죄를 짓는 것을 중단할 수가 없고 인간의 일생에 필연적인 동반사항이다.   [전가된 죄가 본죄임]전가된 죄가 각 개인에게 있는 한 그것이 바로 본죄가 된다. 사람이 죄지을 때 외부를 모방하거나 학습해서 죄짓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속에서 유전죄가 역사하여 자연적으로 자발적으로 범죄하게 만든다. [부패가 바로 본죄]부패는 원래적인 선의 상실과 그 자리에 악이 대신함으로 성립한다. 선의 상실이라는 것은 원시의가 제거되고, 인간의 본성을 장식했던 은사들과 은혜가 제거되었음을 말한다. 그리고 선의 자리에 악한 욕망 곧 전적인 부패가 도입된 것을 말한다. 내적 감정도 본죄를 구성한다. 부패된 감정이 본인에게서 나왔기 때문이다. 내적 감정에서 나온 모든 것 곧 악한 감정, 미움, 시기, 질투, 음란한 생각들, 원망, 성냄 등이 다 죄를 구성한다. 즉 옛사람의 바탕에서 나온 모든 것은 다 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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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7
    오비도제일장로교회April 26, 2026 육욕은 영적 죽음을 유발함
    [육욕은 적극적 악]육욕은 인간본성의 오염 상태이다. 그러나 오염은 인간본성의 실체가 아니고 부수적인 것이다. 원시의가 완전히 박탈된 상태가 인간본성의 오염이고 그것이 육욕으로 나타난다. 원시의와 선이 없어졌으므로 악한 욕망이 적극적으로 지배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단지 원시의의 결여 상태만이 아니고 적극적인 악이다. [육욕은 영적 죽음을 유발함]육욕은 적극적인 악이어서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을 두지 못하게 하고 육적인 것으로 채운다. 육적 쾌락을 사랑하므로 하나님을 멀리하고 하나님과 완전히 소외되게 한다. 그리하여 영적 죽음을 완료한다. 육욕은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 두는 것을 싫어하게 만들므로 다른 영들에 의해 지배받는 것을 마땅한 것으로 여기게 한다. 육욕은 인간의 지성 능력을 어둡게 한다. 그리하여 사물을 지각하면서도 그 유래는 전혀 도외시한다. 또 사물들이 저절로 있게 되었다는 것을 진리로 전제하고 단정한다. 사물들의 유래와 존재 목적도 완전히 도외시한다. 모든 사물들을 인간에 대한 유용성의 관점에서만 본다. 인간본성의 부패는 인간의 의지를 악하게 만들어 악한 것을 고안하고 더 좋아하게 만든다. 그리하여 선보다 악을 추구하기를 좋아한다. 육욕은 인간의 자기 사랑 혹은 자기추구를 최종 목표로 삼는다. 모든 것을 자기를 위해서 이용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모든 활동과 기획의 목표는 자기 자신이다. 자신을 위해서 이용하지 못할 것이 없다. 그리하여 하나님까지도 자기를 위해서 이용한다. 이처럼 사람은 루터의 말대로 자기에게도 구부러져 있다. 사람의 최종 목표는 자기추구이다. 하나님을 자기 삶의 목표로 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자기의 목표로 삼는다. 사람이 자신을 목표로 삼으면 피조물을 전부로 삼는 것이 된다. 피조물이 피조물을 전부로 알고 추구하면 결국 인간은 자기노예가 된다. 이렇게 하여 인간의 영적 죽음이 유발된다. 그렇다면 육욕은 적극적 악임을 부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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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6
    오비도제일장로교회April 19, 2026 전가된 죄과가 악한 욕망을 도입
    [유전죄는 부패로 표현됨]전가된 죄는 본성이 부패로 나타난다. 부패는 사람으로 하여금 죄를 짓고 죄를 좋아하게 하는 바탕을 형성한다. 사람의 마음에 형성된 부패는 내재적인 죄로 지목된다. 내재적인 죄 혹은 부패는 악한 욕망 혹은 죄를 짓기 바라는 욕망으로 구성된다. 상실된 마음에 하나님이 없기 때문에 악한 욕망이 지배적이 된다. 사람이 부패함으로 원래의 선이 없어졌다. 원시선과 의가 없어지므로 그 자리를 악이 대신하게 되었다. 선이 떠났으므로 악한 욕망과 악함으로 지배되고 인간본성이 죄를 자동적으로 바라고 죄짓는 것을 좋아한다. 사람이 부패의 상태에 있으므로 죄짓는 것은 필연적이다. [전가된 죄과가 악한 욕망을 도입]범죄와 죄과의 전가는 사람에게서 원시의와 많은 은사들과 은혜를 제거하였다. 그리고 그 자리에 육욕이 들어와서 인간본성 전체를 부패시키고 오염시켰다. 육욕이 인간본성과 전 인간을 부패시켰다. 육욕은 인간의 전 본성을 파손하여 인간을 유죄하게 만들고 생의 모든 충동과 표현들을 완전히 지배한다. 또 사람으로 항상 범죄하게 함으로 육욕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육욕 혹은 오염은 인간본성의 실체가 아니고 부수적인 것으로 본성의 파손 상태이다. 따라서 적극적 악이다. 육욕은 저급한 충동을 유발한다. 그리하여 언제든지 저급한 욕구가 고상하고 선한 영적 욕망보다 우선하게 되어 있다. 사람은 저급한 욕망을 충족하고 즐긴 후에나 고상하고 영적인 것을 바라게 되었다. 또 육욕은 의지와 희구 능력과 인간의 심장을 원래적 질서에서 돌이켜 하나님을 대항하고 반대하는 자세를 갖게 하였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는 적대감을 갖게 만들었다. 육욕이 저급한 욕망을 일으키고 의지의 방향을 전환하므로 하나님을 싫어하고 미워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 되었다. 육욕이 사람을 늘 범죄하도록 충동하므로 범죄를 쉴 수 있는 것은 죽음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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