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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믿음 바른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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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비도제일장로교회September 19, 2026 시민정부를 허용(창10:8-12; 롬13:1-7)
    [시민정부를 허용(창10:8-12; 롬13:1-7)]   하나님은 칼의 권세로 세사의 죄악을 억제하기로 하셨다. 양심과 자연의 질서로는 사람들의 마음에 일어나는 큰 죄악의 물결이 잘 통제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칼의 권세 곧 권력으로 세상의 죄악을 억제하기로 하셨다. 하나님은 정부로 하여금 칼을 사용하여 악을 억제하게 섭리하셨다. 칼의 권세를 사용하여 악을 억제하지 않으면, 만인이 만인을 대하여 이리처럼 마주 서는 일이 늘 반복되기 때문이었다. 섭리주는 정부의 통제로 악이 제재되어 질서가 세워지게 하셨다(창10:8-12; 롬13;1-7). 시민정부는 악을 제재하고 선을 포상함으로 인륜생활이 가능하게 하는 하나님의 섭리적 조치이다. 시민정부는 죄악을 제거하고 질서를 세우는 하나님의 인륜사회의 통치의 도구이다. 정부가 죄악의 제거를 통하여 시민생활을 가능하게 할 때만 통치권이 정당성을 지녀서 존속할 수 있다. 그러나 본래 목적을 벗어나 죄악의 기관이 되면 존재 이유를 상실하여 통치권을 배척된다. 시민정부는 죄악을 통제하기 위해서 세워진 가장 가장 효력있는 수단이다. 죄악이 통제되고 법질서가 인간사회에 세워질 때 문화는 일어난다. 창조의 탐구와 활용은 통치권의 행사가 바르게 이루어질 때 발흥한다. 그러므로 정부는 문화발흥의 방편이다. 악이 제거되고 질서가 세워질 때 사람의 기능들이 그 직임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권력자에게 권위와 위엄을 부여하셨다(롬13:1-2). 그리고 선을 증진하고 악을 억제하여 벌을 주도록 권세를 부여하셨다(롬13:3-4). 권력을 행사하고 정부를 운용할 수 있도록 세금을 징수하고 사용할 권세도 주셨다(롬13:6-7). 하나님이 주신 이 권세는 창조명령으로 주신 것이다(창1:28). 땅을 정복하라는 명령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명령이 인간사회에도 적용되어 인간세계를 다스리는 권력과 권력행사로 나타났다. 모든 인류에게 주어진 창조 명령에 따른 권세가 사람들에게 적용될 때는 소수의 사람들과 권력자들에게 집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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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35
    오비도제일장로교회September 13, 2026 싸움과 미움이 생활의 방식이 되게 하심(창3:15;6:11-12;8:21)
    [싸움과 미움이 생활의 방식이 되게 하심(창3:15;6:11-12;8:21)]   식량의 부족은 사람들로 서로 싸우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식량의 확보와 농지의 확대를 위해 서로 싸우게 되었다. 한 부족이 강성해지면 다른 부족을 점령하여 그들의 식량과 농지를 약탈하였다. 부족들이 합쳐져서 민족이 되면 다른 민족들의 식량과 토지를 빼앗으려는 마음이 더욱 크게 일어났다. 다른 민족과 국가의 식량과 토지를 빼앗는 일은 바로 그 민족을 대대적으로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필연적으로 동반하였다. 전쟁은 사람들을 대대적으로 죽이는 일을 가능하게 하였다. 또 나라와 민족이 강성해지면 사람들의 마음에 다른 민족과 국가를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이 강하게 된다. 이 지배욕을 달성하는 길은 전쟁으로만 가능하다. 전쟁을 일으켜 약한 민족과 국가를 정복하면 그 나라와 민족을 지배하여 많은 식량과 토지를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나라와 민족의 국경은 언제나 전쟁으로 변하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 되었다. 타락 후에 미움과 싸움이 사람들의 생존방식이 되었다(창3:15). 뱀과 여자 사이에 원수 됨과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 사이에 원수됨이 사람들로 서로 싸우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소속과 편이 다르면 서로 싸운다. 개인들과 부족들과 민족들과 국가들이 서로 싸우며 살게 되었다. 그리하여 민족과 국가들 간에 평화는 어렵게 되었다. 식량이 모자라면 더욱 자주 싸우게 되었다. 식량을 생산하는 토지가 모자라도 서로 싸우게 되었다. 그리하여 평화가 성립하여도 오래 갈 수 없게 되었다. 평화의 왕 그리스도가 오시기까지 평화는 어렵게 되었다. [재앙과 질병과 기근으로 심판]   하나님은 자연적 재앙과 질병, 전쟁, 기근과 가뭄으로 사람들과 부족과 국가와 민족들을 심판하셨다. 이런 일이 닥치면 개인과 부족과 국민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받는다는 의식과 두려움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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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비도제일장로교회September 06, 2026 [사람 죽임을 금하심(창9:5-6)]
    [육식의 허용]   생활환경의 변화로 곡식과 과실의 생산이 인구증가를 감당할 수 없었다. 하나님은 이것을 보충하여 인류로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동물들을 잡아먹는 일을 허용하셨다. 따라서 하나님은 육식을 허용하심으로 사람들의 수명이 단축되게 하셨다(창9:3-5). 육신은 사람들의 신체기관들의 활동주파수를 대폭 증진하고 빠르게 한다. 그리하여 기관들의 활동의 빈도를 높이므로 기관의 소모를 빠르게 하여 수명을 짧아지게 하였다. 또 육식은 왕성한 활동을 촉진하여 에너지의 사용을 필요이상으로 소모시킨다. 그리하여 죽음에 이르는 속도가 빠르게 되었다. 따라서 120년을 살게 된 인류는 수명이 7, 80년으로 단축되었다. 힘이 많고 오래 살면 다 죄악의 용사들이 되어 서로를 해치고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생존을 불가능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인류는 계속 생산되지만 수명은 단축되므로 홍수 전의 사람들에게 있었던 죄악의 창궐은 반복되지 않게 되었다. 육식의 허용으로 하나님은 동물들을 가축으로 사육하는 것을 허락하셨다. 그리하여 부족한 식량을 보충하도록 하셨다. 이렇게 사람들에게 호의를 보이시므로 사람들이 노아홍수 이전처럼 번창하게 만드셨다.   [사람 죽임을 금하심(창9:5-6)]   섭리주 하나님은 사람들이 다시 땅 위에서 번창하도록 명령하셨다(창9:1-2). 사람이 번창하도록 하나님은 짐승들로 사람을 무서워하게 만드셨다(창9:2). 또 하나님은 사람들도 서로를 죽이지 못하도록 금지하셨다(창9:5-6). 사람이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도 반드시 죽임을 당하도록 정하셨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기 때문에 죽음에 합당한 범죄를 하지 않으면 사람을 죽일 수 없게 만드셨다. 그리하여 노아홍수 이전처럼 사람이 지구상에 가득하게 되도록 하셨다. 그러나 새로운 문제가 대두되었다. 사람들은 과도히 증가하고 식량과 식량생산지는 늘 부족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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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33
    오비도제일장로교회August 23, 2026 기후체계의 변화(창8:22)
    [심판의 두려움을 사람과 동물의 심장에 각인하심(창9:2)-2]   인류의 제2의 조상인 노아와 다른 모든 후손들에게 심판의 무서움일 가슴에 깊이 박히게 되었다. 죄의 본성을 따라 사람이 죄를 짓지 않을 수 없었지만, 죄지으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에 이른다는 생각이 의식에 깊이 침잠하였다. 그리하여 범죄하려면 양심의 가책을 받아 떨리게 되었다. 범죄를 계획할 때부터 두려움과 불안이 사람의 가슴을 덮쳐오게 되었다. 물로 세상을 심판하심이 사람의 마음에 깊이 박히므로 창조주 하나님은 그 심판의 목적을 이루시게 되었다. 비록 처음 인류는 다 멸하셨어도 다시 그런 멸망이 반복되지 않도록 예비조치를 하신 것이다. 홍수심판 후에 세상은 주 예수가 오셔서 세상을 구원하실 때까지 존속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죄를 지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죄짓는 것을 주저하고 더디게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생활환경을 바꾸심(창8:22; 9:2-3)]   하나님은 인류를 다시 멸하지 않기로 작정하셨다. 그러기 위해 하나님은 섭리적 조치를 취하셨다. 그것은 열심히 일해야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신 것이다. 사람은 편안하면 죄짓는 일에 모든 생각과 힘을 모은다. 따라서 죄짓는 일이 어렵도록 생활환경을 바꾸셨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생존에 몰두하도록 하심으로 죄짓는 일을 제지하기로 하셨다.   [기후체계의 변화(창8:22)]   타락 후 하나님은 아담에게 땅을 파서 살도록 하셨다. 처음에는 온화한 기후체계가 바뀌지 않으므로 풍성한 곡식과 과실로 아무 염려 없이 살 수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유로운 생활로 인하여 죄지을 생각에 마음과 힘을 모으고 모든 지혜와 기지를 동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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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32
    오비도제일장로교회August 16, 2026 심판의 두려움을 사람과 동물의 심장에 각인하심(창9:2)
    노아와 가족들과 동물들을 물의 재앙의 두려움과 공포를 마음에 깊이 담고 방주에서 내려왔다. 그들은 전혀 달라진 생활환경에서 살아야 했다. 홍수 전의 환경이 전혀 아니었다.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고 새롭게 개척해야 했다. 노아와 그의 아들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땅을 파서 생존을 보존하며 함께 배에 탔던 동물들을 보호하고 기르는 것이었다. 노아는 땅에 내려오자 맨 먼저 창조주 하나님께 제사하였다. 자기와 함께 방주에 있었던 동물들 중에서 깨끗한 동물들을 골라 여호와께 번제로 바쳤다(창8:20-21). 험한 풍랑과 폭풍과 홍수의 위협에서 지켜주셨음을 감사하였다. 또 하나님의 심판의 준엄함을 잘 지켜 보고 그 심판을 인해서도 감사하였다. 노아는 자기를 택하여 제 2의 인류의 조상이 되게 하셨음을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였다. 하나님은 노아의 제사를 받으시고 두 가지를 작성하셨다. 첫째는 사람들의 생각과 계획이 악할지라도 그들을 멸하지 않기로 하셨다. 사람들만 멸망시키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모든 동물들도 사람 때문에 멸망시키지 않기로 하셨다(창8:21). 죄악이 극에 달해도 더 이상 물로 세상을 멸망시키지 않기로 하셨다.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세상을 구원하기까지 인류를 보존하기로 하셨다. 둘째로 사람을 다시 번성시켜 모든 땅을 채우기로 하신 것이다(창9:1-3). 그러기 위해 동물들에게 사람을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게 하셨다. 동물들이 쉽게 사람을 공격하지 못하게 하셨다. 어떤 맹수라도 일단은 사람을 두려워하게 하셨다(창9:2). 이에서 나아가 동물들을 양식으로 사용하게 하심으로 모든 동물의 생명이 사람의 처분에 달리게 하셨다. 제사 후에 노아는 자기의 생존과 온 가족의 생존을 위해 힘써 땅을 팠다. 땅을 파서 곡식을 가꿀 뿐 아니라 포도를 길러 가공하여 생활할 수 있었다(창9:20-21). 또 모든 짐승들의 생존을 위해서도 노력하였다. 무엇보다도 죄악으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의 무서움이 가슴에 깊이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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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31
    오비도제일장로교회August 09, 2026 홍수로 처음 세상을 심판하심(창6:11-7:22)-2
    [홍수로 처음 세상을 심판하심(창6:11-7:22)-2]첫 사람의 반역과 아담의 후손들의 포악을 함께 물어 하나님은 그들을 심판하셔서 땅에서 쓸어버리기로 하셨다(창6:13). 이 심판으로 첫 인류의 죄악을 그 값대로 물으실 뿐 아니라 다른 동료 거주자들도 함께 소제하기로 하셨다. 이렇게 함으로 하나님을 반역한 죄악과 하나님의 법을 어기며 사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보이기로 하셨다. 이 심판은 물로 집행하기로 하셨다(창6:17). 그것은 숨 쉬는 모든 생명체들을 멸하심이었지만 멸절은 아니었다. 그래서 모든 동물들의 종류를 보존하기로 하셨다(창6:17-20). 이것이 뜻하는 것은 하나님이 처음 세상을 심판하시지만 새롭게 인류의 역사를 시작하기로 하심을 말한다. 무엇보다도 죄악에 따라 인류를 벌하심으로, 범죄하면 죽음에 이르는 것을 밝히고 죄를 심하게 짓지 못하도록 하려는 목적이었음을 나타내셨다. 처음 세상이 물로 심판받는 것을 온 백성들로 기억나게 하여 죄짓는 일에 담대하지 못하게 하심이었다. 즉 이런 심판의 조치로 인류가 완전히 멸절되는 것을 막으셨다. 사람이 한번 범죄하면 죄악이 인간의 본성이 된다. 사람은 죄악의 본성을 따라 마지막 단계까지 죄짓기를 바란다. 이런 인간의 마음 판에 죄지으면 심판받고 멸망한다는 것을 새기셨다. 그리하여 죄악의 형벌에 대한 공포를 마음 깊이 새기셨다. 노아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신 것은 그리스도의 구속 때까지 인류를 보존하시려는 섭리적 조치였다. 하나님은 심판을 집행하셨다. 노아를 제2의 조상으로 삼기로 하시고 그와 그의 자녀들을 보존하기 위해 방주를 만들게 하셨다. 그리고 숨 쉬는 모든 생명체들도 종류대로 각기 암수를 보존하기로 하셨다(창6:13-22). 40일 밤낮 비가 쏟아지고 땅속 깊은 곳의 샘들이 터지게 하였다. 그 물이 하늘 아래 모든 산들을 덮었다(창7:13-20). 모든 생물들이 죽어 분해되도록 물을 150일 동안 땅을 덮었다. 숨쉬는 모든 생명체들은 다 죽었다(창7:23). 사형집행이 완전하게 시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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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30
    오비도제일장로교회August 02, 2026 [홍수로 처음 세상을 심판하심(창6:11-7:22)]
    [홍수로 처음 세상을 심판하심(창6:11-7:22)]처음 죄악은 그 본성대로 역사하여 온갖 악들을 생산하였다. 죄악은 크게 강성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악하게 만들었다. 사람의 출생이 증가함에 따라 죄악도 더 많아지고 강력해졌다. 사람들의 모든 계획과 생각은 다른 사람들을 해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창6:7).폭력이 사람들의 생활의 방식이 되었다(창6:13). 그러므로 사람들이 서로의 생존을 용납하지 않았다. 오직 폭력으로 자기의 생존을 지키고 다른 사람의 생존을 박탈하였다. 즉 자기의 생존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죽이는 것이 일상의 일이 되었다. 온 땅이 부패하고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다고 하였으니(창6:11-12) 사람마다 폭력으로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살육과 분쟁이 사람이 사는 고을마다 가득하게 되었다. 이 방식으로는 인류의 존속이 불가능할 만큼 되었다. 또 힘 있는 사람들이 모든 생존의 수단을 독점하였다. 생존수단을 확보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생존을 용납하지 않고 죽게 만들었다. 땅은 저주를 받아 처음 창조된 상태에서만큼 곡식과 열매를 내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자연히 생존수단을 차지하기 위해 늘 분쟁하고 남의 것을 빼앗고 도적질하였다. 폭력 앞에 법은 지켜질 수 없는 법이다. 또 다른 생명체들에게도 폭력을 가하여 폭력이 세상의 질서가 되었다. 따라서 동물세계에서도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잡아먹는 일이 생존의 방식이 되었다. 폭력 혹은 포악이 생존방식이 된다면 살아남을 사람들의 수가 늘 줄어들게 된다. 그러면 인구의 감소속도가 출생으로 인한 증가를 넘어서서 인류의 존속이 불가능하게 된다. 또 인류의 생존방식 때문에 늘 폭력이 행사되어 죽고 죽이는 일이 끊이지 않게 되었다. 죄악의 번창과 계속은 창조주의 섭리를 궤도에서 이탈하게 하였다. 죄악은 날이 갈수록 더해지므로 인류 종족들의 죄악이 극에 달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인류를 죄악대로 벌하여 멸하기로 하셨다. 온 인류와 땅의 동물들을 다 멸하기로 하셨다(창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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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비도제일장로교회July 26, 2026 문명을 이루도록 하심
    [문명을 이루도록 하심]땅을 파서 식량을 생산하는 일은 자연히 문명세계를 이루게 되었다. 창조된 대로 자연에서 그전처럼 살 수 없게 된 사람은 자기의 세계를 손으로 건설하여 문화를 이루게 되었다. 그리하여 사람의 세상은 점차 자연에서 문화로 나아갔다. 땅을 파서 먹거리를 생산하게 된 세상에서는 학문이 발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땅을 쉽게 파기 위해서 쉬운 방도를 구할 수밖에 없었다. 삶의 방식을 개선하기 위해서 방법을 늘 연구하므로 학문이 일어나게 되었다. 사람은 자연히 자기 주변의 환경을 탐구하게 되었고 땅과 주변사물들을 연구하여 법칙과 성질을 밝히게 되었다. 사람은 힘든 노동 때문에 휴식을 바라게 되었다. 이 욕구는 몸과 마음을 쉬게 하는 육체적인 휴식뿐만 아니라 좀 더 나은 휴식을 추구하게 만들었다. 휴식에 대한 욕구가 예술을 발달하게 하였다. 예술로 목과 마음을 쉬게 할 뿐만 아니라 자기의 생활을 더욱 풍성하게 하였다. 풍성한 예술을 발흥시키므로 사람의 사회가 문화사회가 되었다. 노동이 인류 생존과 문화발달의 기본이 되었다. 이처럼 하나님은 사람으로 땅을 파서 살게 하므로 창조를 계발하여 창조 비밀을 캐내게 만드셨다. 땅을 파서 살아야 하므로 자연히 하나님의 창조를 탐구하고 연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처음 세상을 심판하심(창6:5-8:19)]하나님은 노아홍수로 처음 세상을 심판하시어 죄의 값이 죽음임을 분명하게 인류의 양심에 각인하셨다. 그 후에도 인류의 종족들에게 심판을 집행하여 큰 죄악의 창궐을 막으셨다. 하나님은 처음 세상을 물로 멸하심은 멸망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죄를 본성으로 가진 인류가 완전한 범죄로 멸절되지 않고 존속하게 하신 섭리적인 조치였다. 사람이 범죄할 경우 심판하여 죽음에 이르도록 정하셨지만 (창2:16-17), 실제로 범죄하였을 때 즉각 죽음에 이르게 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하나님은 사람의 반역을 참으시기로 하셨다. 그러나 사람의 죄악을 방면하시는 것은 아니었다. 범죄한 사람들을 용납하시고 그들의 생존을 보장하시기로 작정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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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비도제일장로교회July 24, 2026 땅을 파서 살게 하므로 죄악에 전심하지 못하게 하심(창3:17-19)
    [죄의 억제 조치]하나님은 인류의 범죄를 자기의 더 큰 영광과 사랑을 나타내는 계기로 삼기로 하였다. 하나님은 반역한 인류를 더 큰 사랑의 역사로 돌이켜 다시 자기의 백성으로 삼기로 하셨다. 그러기 위해 하나님은 인류가 죄로 멸절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기로 하셨다. 이 조치로 인류가 멸절되지 않고 살아남아 하나님의 구원에 동참할 수 있게 하셨다. 창조주는 섭리주로서 여러 조치를 위하셨다. 죄의 억제 조치로 하나님은 여러 방책들을 미련하셨는데 그 첫 번째가 바로 사람으로 땅을 파게 하신 것이다. [사람으로 땅을 파서 살게 하셨다(창3:17-19)]창조주 하나님은 범죄자들로 당장 죽게 하지 않으시고 그들의 생존을 보존하기로 하셨다. 땅을 파서 먹는 것을 해결함으로 생존하게 하셨다. 첫 인류는 하나님이 지으신 동산에서 많은 과실과 채소로 배풀리며 평안하게 살았다. 이렇게 편안하게 살 때 그들은 반역하였다. 하나님은 더 큰 반역을 막기 위해서 사람으로 땅을 파서 살게 하셨다. 하나님의 밭에서 직접 배불리 먹으며 자유를 누리던 데서 땅을 파서 자기들의 생존을 책임지게 하셨다. [땅을 파서 살게 하므로 죄악에 전심하지 못하게 하심(창3:17-19)]하나님은 사람으로 허리가 구부러지도록 땅을 파게 하셔서 죄악에 전심할 수 없게 하셨다. 당장의 생존이 자기들의 손에 달리게 함으로 죄악을 꾀하고 범할 시간적 여유를 갖는 일이 쉽지 않게 되었다. 힘써 땅을 파서 곡식과 양식을 생산하지 않으면 자신과 가족의 생존을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생존문제가 절박하면 죄악을 고안해내어도 실행할 힘과 여유가 없어지게 된다. 창조주는 사람들의 생활방식을 규정하시어 죄악에 의해 종족들이 사라지거나 멸절되지 않게 하셨다. 생존문제가 절박하기 때문에 죄악을 위해 시간과 힘을 마련할 수 없게 되어 죄악에 탐닉할 수 없게 하셨다. 사람은 생존이 절박해도 조금만 여유가 있으면 곧장 죄악을 고안하고 실행하려고 노력한다. 죄의 욕망은 사람에게 늘 있으므로(창4:7)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죄악을 고안하는 일은 중단되지 않는다. 그러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 땅을 파서 수고해야 하는 당위가 작용하여 죄악의 창궐을 막도록 조치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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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비도제일장로교회July 12, 2026 우상숭배의 길
    [우상숭배의 길]사람은 종교적 행위를 하지 않아도 이미 종교적 경지에 들어가 있다. 자기를 최종 목표와 최고 가치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창조주 하나님을 버렸으므로 자기 존재와 자기 가치에서 최고목표를 발견한다. 이것은 이미 종교적 경지에 이른 것이다. 사람은 자기의 유한성을 의식한다. 그래서 자기보다 더 크다고 인정되는 존재에 의존하려는 강한 성향을 갖는다. 인간의 의존성향을 실현하기 위해 사람은 창조주 하나님에게로 돌아가지 않는다. 사람은 다른 영적 존재와 구체적인 피조물에게로 주의를 향한다. 그리하여 피조물들 중 하나나 둘 혹은 몇을 골라 신으로 섬긴다. 그리고 그 신들에게 대단한 권세와 광채를 부여하여 죄고 존재로 삼는다. 이렇게 조성한 신들에게 최고 영광과 존귀를 돌리고 그들을 경배한다(롬1:25). 이렇게 함으로 사람들은 자기들의 종교적인 의무를 다한 것으로 여긴다. 사람들은 피조물들을 신들로 섬기는 우상숭배를 하면서 성적 범죄를 병행한다. 피조물을 신으로 섬기는 것이 헛것임을 의식하므로 이 허무함을 성적 범행으로 달랜다. 즉 육체적 쾌감에서 허무함에 대한 위안을 얻는다. 그리하여 우상숭배와 성적 범행은 언제든지 병행하였다. 우상숭배가 성한 곳에는 성적 범행도 함께 번창한다. 창조주를 배척한 후에 인류 종족들은 어떤 행태로든지 우상을 갖고 있다. 사람들은 종교적인 예배의 형식은 아니어도 우상을 섬기고 있다. 그것이 돈이든지 성적 쾌락이든지 지식의 추구이든지 아니면 구체적인 형태를 띠는 물건이든지 다 우상을 갖고 거기에 몰두한다. 곧 탐욕의 대상 (엡5:5)에 몰두하면 그것이 우상숭배가 된다. 이렇게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가기 전에는 언제나 우상을 갖고 있고 우상숭배자로 남는다. [범죄의 일상화]모든 사람은 반역자이기 때문에 그 마음에 하나님을 미워하고 적대심을 갖고 있다. 따라서 행동하고 결정할 때 마음속으로부터 하나님의 법에 어긋나는 것을 택하고 좋아한다. 사람은 죄의 범을 따라 행동하고 결정한다. 그리하여 언제나 죄를 택하고 선을 택하지 않는다. 죄가 생활과 분리되지 않는다. 죄가 완전히 생활화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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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비도제일장로교회July 05, 2026 인간의 자기추구
    [육적 쾌락과 만족이 삶의 최상의 목표가 됨]   사람은 평생 손의 수고로 땅을 파도 자기의 배를 채우고 생존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 되었다.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므로 땅을 파도 생존이 쉬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창3:17-19).사람은 자기 배를 채우게 되면 쾌락을 원한다. 쉬고 평안하면서 육체적 즐거움을 바란다. 사람은 한번 맛본 쾌락을 즐기고 쾌락에 탐닉한다. 여러 종류의 쾌락이 있지만 일차적 추구의 목표는 육체적 쾌락이다. 자기의 능력이 닿는 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쾌락을 즐기고 추구한다. 그리하여 인류 종족들은 자기들 나름대로 온갖 종류의 쾌락을 고안해내었다. 사람은 육체적 쾌락과 만족을 위해서 돈을 벌고 수고한다. 능력이 되는대로 쾌락의 범위와 질을 높인다. 쾌락의 추구를 통하여 인간은 자기를 추구한다.   [인간의 자기추구]   사람의 인격은 하나님의 인격에 비추어서만 바른 인격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남으로 사람이 인격을 바르게 구성할 표준을 상실하였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표준으로 삼고 절대가치로 삼게 되었다. 사람은 가장 소중한 것이 자기 자신이 되었다. 자기의 존속과 함께 자기의 존재를 가장 귀중한 가치로 삼았다. 사람이 추구하는 모든 것들의 최종 목표는 결국 자기 자신이 된다. 사람은 영적 존재로서 자기과시와 자기인정에서 모든 가치를 발견한다. 그리하여 자기과시와 인정받음을 위해서 일생을 산다. 사람이 자기를 최종 목표로 삼는다면 이미 종교의 경지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자기가 정한 일에서 큰 성공을 거두려고 하는 것도 다 자기과시에 근거한다. 자기 욕구충족의 단계를 넘어서 과도하게 돈을 버는 것도 자기과시에 근거하고 있다. 이 방식으로 사람은 자아만족을 누리고 괘감을 즐긴다. 이런 방식으로 사람은 자기실현을 이루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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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5
    오비도제일장로교회June 21, 2026 육적 생존을 위해서 진력(창6:3)
    [죄로 육신이 된 인간]사람이 처음 창조되었을 때는 영혼을 가진 육체가 아니라 생명의 혼이었다. 생명의 혼(창2:7) 혹은 생령은 육체에 생명의 혼을 가진 정도가 아니라 혼 혹은 영의 방식으로 사는 존재를 말한다. 비록 아담은 육체를 가졌어도 그 존재방식은 완전히 영적 존재였다. 그러나 하나님을 반역한 후부터는 그의 존재방식이 완전히 바뀌었다. 더구나 언약의 법에 의해 아담의 죄과를 전가 받은 모든 후손들의 존재방식이 완전히 바뀌었다. 죄과의 전가로 죄인이 되었을 때뿐만 아니라 죄짓는 것을 생활의 방식으로 삼았다. 아담과 그의 후손들은 죄 때문에 육체 혹은 육신이 되었다. 삶의 방식이 완전히 육체의 방식이 되었고 영적 존재방식으로 살지 못하게 되었다. 죄로 사는 것이 곧 생활의 법이 되었다. 그리하여 더 이상 혼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육체적 방식으로 사는 육신이 되었다. [육적 생존을 위해서 진력(창6:3)]사람은 본래 영적 존재로 창조되었다. 비록 육체로 살지만 영적 존재여서 하나님을 모시고 살도록 조성되었다. 그러나 범죄하여 육신이 됨을(창6:3) 사람의 삶이 육체적 생존을 전부로 삼게 되었다. 영적 영역은 부차적인 것이 되어서 필수불가결한 것이 될 수 없게 되었다. 모든 주의와 관심과 노력이 육체적 존속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먹고 살아남는 것이 사람의 활동의 최우선 순위가 되었다. 자기 손의 수고를 통해서 먹을 것을 벌어야 하므로 먹는 것을 위해서 사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되었다. 육체적 생존이 삶의 전부가 되고 영적인 것은 의식의 영역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하나님을 섬기고 사는 일은 육체적 생존이 이루어진 후에나 가능하고 타당한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이런 생존의 방식은 동물들의 생존방식과 별로 다르지 않게 되었다. 사람은 바로 육체가 되었다. 그리하여 사람과 육신은 일치되었다. 육체의 존속이 사람의 사는 전부가 되었다. 사람은 먹고 마시는 것으로 시작하고 먹고 마시는 것으로 삶을 마감한다. 이에서 나아가 자기의 분신의 연속을 위해서도 진력하게 되었다. [육체적 분신의 연속을 위해 진력]아담이 범죄함으로 죽음이 확정되었다. 사람들은 영생에 이름에 불가능함을 내적 본심에서 절감하였따. 그리하여 자기의 분신을 확장하기로 결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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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4
    오비도제일장로교회June 21, 2026 육체적 죽음(창3:19)
    [육체적 죽음(창3:19)]죽음은 사람이 만나는 가장 큰 재앙이다. 죽음을 재앙이라고 하는 것은 죽음이 인간에게 자연적인 것이 아니고 본성에 고유한 것도 아님을 뜻한다. 사람은 죽도록 창조되지 않았음을 뜻한다. 사람이 범한 죄 때문에 죽음이 부과되어 본성적이 되었다. 범죄 이후에는 모두가 죽도록 작정되었기 때문이다. 죽음은 육체적 생명의 끝남을 뜻한다. 죽음으로 사람의 생명이 종결되고 멸절되기 때문이다. 사람은 죽음에서 자기 인격의 허무성과 비참함을 느낀다. 사람도 짐승들의 존재의 수준으로 격하되고 동일하게 취급받기 때문이다(전3:19). 즉 죽음으로 인간이 다른 피조물과 동일한 운명으로 격하된다. 사람이 다른 피조물과 아무 차이가 없어져서 동일하게 무로 돌아간다. 사람은 죽음에서 자기의 일생 동안 사역이 허무였다고 절감한다(전5:15). 자기의 존재가 사라지기 때문에 허사라고 여길 뿐이다. 죽음이 사람의 인격과 존재를 무로 돌리므로 사람은 죽음을 싫어하고 격렬하게 대항한다. 그리하여 할 수 있는 대로 자기의 생명을 연장하려고 모든 노력을 다한다. 그래도 죽음을 피할 수 없음을 절감한다. 하나님은 생명의 박탈인 죽음을 죄에 대한 벌로 정하셨다. 사람은 죽음으로 피조물들을 다스림이 끝나고 육체적 영광과 행복도 매장된다. 그는 모든 사람의 기억에서도 지워진다(전9:5). 결국 죽음은 사람의 존재를 완전히 해소한다. [신자의 경우]죽음 보편적이므로 믿는 사람에게도 예외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신자들에게 육체적 죽음은 근본형벌이 아니다. 신자에게 죽음은 범죄를 제약하여 성화에 이르게 하는 섭리적 조치이다. 육체적 죽음은 겸손과 인내와 징계의 법으로 활용되어 구원에 이르게 한다. [영원한 죽음: 불신자의 경우]육체적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인격과 존재가 완전히 멸절되는 것이 아니다. 육체적 죽음으로 사람이 산자의 세계에서 완전히 분리되고 단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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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3
    오비도제일장로교회June 07, 2026 영적 무능력
    [죄에 대한 형벌: 죽음(창2:17; 롬1:32)]사람은 죽도록 창조되거나 출생한 것이 아니다. 영혼만이 영생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도 무한히 살게 조성되었다. 카이퍼(네덜란드 수상이자 신학자)의 말대로 사람은 죄의 상해가 가해지지 않았으면 영구히 살 수 있게 조성되었다. 사람이 죽게 된 것은 범죄함으로 정해졌다. 죄에 대한 형벌로 죽음이 부과되었다(창2:17). 사람에게 임한 형벌은 육체적인 죽음과 영원한 죽음으로 이루어진다.   [영적 죽음]영적 죽음은 아담이 반역을 거행하여 하나님과 단절되었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육체적 생명은 930년간 지속되었지만 그의 마음에 하나님을 상실하므로 영적 죽음은 이미 아담의 삶에서 실재가 되었다.   [영적 무능력]영적 죽음은 신 형상의 은사들의 상실과 자유 결정의 힘을 박탈당함으로 나타났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의 인격상을 반사할 수가 없다. 이미 육신이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과 그의 구원사역을 받아들일 능력이 전혀 없다.   [자유의지는 시민선의 영역에만 국한한다]인간의 의지는 타락 상태에서도 자유이다. 즉 원하고 싫어하는 능력으로서는 자유이다. 인간의 의지는 일반은총을 힘입어 시민선 곧 시민윤리는 행할 수 있다. 그러나 시민선도 자기 추구에 의해서 충동되고 시행된다. 시민선의 영역에서라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법을 이루기 위하여 선을 행할 수가 없다.   [자유의지는 구원은혜에 있어서 자유를 갖지 못한다]영적인 일들에 있어서 의지는 자유가 아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으며 그의 구원사역을 받아들이는 것은 자유의지로 할 수가 없다. 반역 후에는 인간의 의지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반대되는 것만을 즐거워하고 행한다. 영적 일에서는 의지는 자유를 행사할 수 없다. 인간의 의지는 악을 택하는 데만 자유한다. 즉 큰 악을 택할 것인가, 작은 악을 택할 것인가에는 자기결정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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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2
    오비도제일장로교회May 31, 2026 [죄의 자리: 사람의 인격의 중심 곧 심장]
    [죄의 자리: 사람의 인격의 중심 곧 심장]죄는 사람의 인격 혹은 심장에 자리한다. 죄는 인간 자신에서 나오고 다른 곳에서 오지 않는다. 인간 자신 혹은 인격이 죄가 자리한 곳이다. 죄는 사람의 심장에서 나오고 신체에서 나오지 않는다. 죄가 사람의 심장 곧 인격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심장은 악이 끊임없이 생산되는 곳이다. 외부에서 악이 오기도 하지만 죄악은 인간의 심장에서 쉼 없이 생산된다. 형태를 달리해서 온갖 죄악을 늘 생산하는 것이 인간의 심장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심장 혹은 마음이 모든 죄악의 출처라고 해야 한다.사람은 죄를 욕망한다. 죄를 욕망하는 내 안에 죄가 자리한다. 사람은 자기의 인격적 결정으로 하나님을 반역하였다. 반역죄 후에는 반역의 성향이 사람의 인격에 자리한다. 타락 이후에 사람은 본성적으로 하나님을 싫어하고 거부한다. 처음 반역사건의 구조가 마음 판에 자리 잡아 나타난 현상이다. 처음 사람이 하나님을 반역하되 언약을 체결한 상태에서 모반하였다. 그 범죄 때문에 모든 사람은 언약주 하나님을 싫어하고 미워한다. 그리고 자기의 의식에서 하나님 생각을 제거하기를 원한다. 만일 언약주를 인정하면 언약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언약 파기의 책임 때문에 하나님을 싫어하고 미워하며 그를 피하려고만 한다. 생각에서라도 하나님을 만나기를 싫어한다. 사람은 출생 이후 본능적으로 하나님을 싫어하고 미워한다. 그것은 죄가 사람의 인격의 중심 곧 심장에 자리하고 있음을 뜻한다. 죄의 자리는 바로 사람의 심장 곧 인격의 중심이다. 사람은 의식적으로 하나님의 법을 싫어하고 마음에 두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법과 계명 대신에 죄의 법을 따르기를 좋아한다. 하나님의 법을 대신할 법을 고안해 낸다. 사람은 하나님의 법에 반대되는 판단을 하고 그에 따라 행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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