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16, 2022 . 올랜도바른믿음교회 너무 멀리까지 와 버린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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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한국에서 IMF 사태가 터지고 생각지도 않은 한국의 가부장적 제도가 와해되면서 ‘아버지’, ‘남편’, ‘남자’라는 단어들이 새롭게 조명될 쯤, 2001년 3월, 잔뜩 움츠리고 숨죽여 있던 남성들의 야성을 깨우는 한 편의 영화가 상영이 됩니다. 70-80년대를 추억하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은 보셨을 법한 ‘친구’라는 영화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의 마지막 대사가 요즘 저의 심정을 대변해 주는 말 같았습니다. 이 영화의 처음 장면과 마지막 장면은 초등학생 5명의 등장과 퇴장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부산 바닷가에서 하나의 튜브에 다섯 명의 아이들이 매달려 있다가 조류에 휩쓸리는 일이 생깁니다. 그리고 다시 해변으로 다섯 명의 아이들이 힘을 모아 발버둥을 칩니다. 그 때 한 아이가 말합니다. “우리 너무 멀리 온 건 아니가?”
가끔씩 수요성경공부를 준비하다가도, 혹은 주일 설교, 혹은 아침경건회 말씀을 준비하다가도 되려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과연 이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계란으로 바위치는 것은 아닐까?’ ‘혹시 내가 틀린 것이라면...’ 등등의 마음이 저를 어지럽게 할 때가 있습니다. 다들 문제없이 잘 지내고 있는데, 괜히 내가 불필요하게 떠들어 대는 것은 아닌가라는 질문을 제 스스로에게 수도없이 해 봅니다.
우린 지난 20-30년동안 많은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어쩜 잃어버린지도 모른 채 살아오고 있는지 모릅니다. 혹자는 말합니다. 좀 잃어버리면 어떠냐고 말입니다. 이대로도 문제없다고 말입니다. 1991년 다미선교회 사건과 한국교회 내의 교리와 신학의 분쟁으로 교회에 대한 시선이 곱지 못할 시기, 혜성같이 등장한 복음주의 운동과 복음주의 설교는 신자든 비신자든 모두에게 인기와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중심은 교회를 세상과 더 가까이 함으로 쉽게 교회 안으로 비신자들의 발걸음을 옮기고자 하는 선한(?) 의도에서였습니다. 하지만 교회의 문턱을 낮춘다는 미명아래 교리와 신학을 터부시한 결과, 지난 30년 동안 한국 기독교를 정체도 모를 신종교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교리와 신학이 교회내에서 사라지면서 이단들이 교회내에 잠식해 들어왔으며 잘못된 신앙과 이단사상이 참된 진리인냥 위장하고 활개를 치고, 교인들도 제각기 각자의 상식과 신념을 신앙으로 여겨 교리와 신학의 지도를 받기보다 각자의 소견대로 믿게 되는 혼돈의 시대에 빠져 버렸습니다. 신앙생활이 아니라 교회생활로 변질되어 버렸고 구원이 아니라 기복이 중심이 되어 버렸습니다. 과연 이 삐뚤어진 기독교를 다시 되돌릴 수 있을까요? 우린 다시 참소망의 언덕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너무 멀리 와 버린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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