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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믿음 바른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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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비도제일장로교회October 24, 2024 첫 언약체결이 밝힌 진리(1)
    [언약을 체결함(창2:15-17)]창조경륜을 성취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아담과 언약을 체결하셨다. 언약체결로 창조주는 아담과 그의 후손을 자기의 백성으로 삼으셨다. 하나님은 그 백성 가운데 충만히 거주하기로 하셨기 때문이다. 창조주는 선악계명으로 아담과 언약을 맺으셨다. 선악계명은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선이고 섬김을 거부하는 것이 악이 됨을 뜻한다(창2:17). 하나님을 섬기면 선이므로 생명에 이르고 섬김을 거부하는 것은 악이어서 죽음에 이른다. 하나님만을 잘 섬기도록 하려고 선악계명을 한 나무에다 매셨다. 아담과 언약을 체결하실 때 창조주는 명령의 방식으로 하셨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창2:17). 선악과계명은 창조주만을 하나님으로 섬겨야 한다는 명령이고 백성의 생활의 규범이었다. 명령만 하셔도 쌍방 간의 언약이다. 피조물은 창조주의 명령을 받아들임으로 하나님의 백성되는 것임을 잘 인지하였다. 언약체결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가지시게 되었다. 하나님은 언약백성 가운데 거주하셨다. 하나님의 거주하심은 영의 임재로 이루어졌다(창6:3). 창조주는 언약백성 가운데 거주하시므로 찬양과 경배를 늘 받으셨다. 백성은 창조주의 지혜와 권능을 인하여 끊임없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였다. 더구나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언약백성됨을 인해 감사하고 찬양하였다. 언약체결로 하나님은 창조경륜을 이루셨다. 언약 후 백성은 창조주를 날마다 찬양하고 경배하는 삶을 살았다. 하나님 찬양과 경배가 그들의 삶의 본분이고 전부였다. 창조를 탐구할 때도 언약백성은 창조주의 지혜와 권능과 호의를 인해 끊임없이 감사하고 찬송하며 경배하였다.   [첫 언약체결이 밝힌 진리]☞ 언약은 사람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는 약정임을 잘 드러났다. 그리고 언약체결의 근본목적이 창조주만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것임을 천명한 것이다. 또 언약을 체결하면 언약의 주이신 하나님이 반드시 그의 백성 가운데 임재하신다는 것을 밝혔다. 이 언약체결의 법이 언약 피기 후 첫 언약을 회복하려고 하신 조치들에 그대로 적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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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비도제일장로교회October 17, 2024 언약: 개혁신학에만 있는 것
    [언약체결에 대해서]언약은 사람을 하나님 백성으로 삼는 약정이다. 창조주는 아담과 그의 후손을 자기의 백성 삼으시려고 언약을 체결하셨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으로 창조주만을 하나님으로 섬기도록 하기 위해서 선악과계명으로 언약을 맺으셨다.   ☞ 첫 언약=백성 됨의 약정(창2:15-17) 하나님은 창조를 계획하실 때 창조경륜을 세우셨다. 그 경륜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가지시고 그 백성 가운데 거하시며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 경륜을 이루시기 위해서 만물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자기의 형상대로 곧 인격체로 지으셨다. 그리고 백성을 삼으시기 위해 언약을 체결하셨다.   ☞ 언약 설립의 준비(창2:4-15)창조주는 언약을 체결하기 위해 백성이 살 거소를 마련하셨다. 그것이 바로 에덴동산의 조성이다(창2:8-9). 이 동산에 하나님은 백성들의 먹거리가 될 나무들을 다 나게 하셨다. 거기에는 선악과나무와 생명과실나무도 있었다. 또 동산 중앙에 물 근원도 조성하셔서 백성들로 마시게 하셨다. 물 근원은 강이 되어 동산 주위를 흐르므로 동산을 기름지게 하고 잘 지켜지게 하셨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을 성전의 구조로 지으셨다. 그곳에서 하나님이 경배 받으시고 찬양 받으시기로 하셨기 때문이다. 또 하나님이 거주하실 곳이므로 성전이다.   ☞ 이스라엘과 언약체결을 위한 사전준비하나님은 언약을 맺으실 때는 언제나 사전준비를 하신다. 첫 언약체결의 절차경위가 그 다음 언약체결에서도 동일하게 진행된다.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들을 자기의 백성 삼기로 하실 때도 사전에 준비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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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1
    오비도제일장로교회October 06, 2024 주일로 날들이 시작한다
    [주일로 날들이 시작한다(요20:1)] 재창조가 이루어지기 전에는 모든 날들이 마감되고 안식일이 왔다. 그러나 부활 후에는 주일로 모든 날들이 시작된다. 부활의 날은 창조의 완성이 시작되는 날이어서 영원한 안식에 이르게 할 날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활동의 시작에 하나님 경배의 날을 갖는다. 영원한 안식은 중단없는 하나님 계명이고 섬김이기 때문이다. 주일로 날들이 시작하므로 창조경륜의 목표에 이른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 섬김을 모든 활동의 시작으로 삼아야 한다. 이 목적으로 주일이 모든 날들의 시작이 되었다. 즉 하나님을 예배함으로 모든 활동이 시작되어야 함을 말한다. 이 목표대로 안식일이 주일로 바뀜으로 하나님 섬김이 모든 것의 시작이 되었다. 하나님 섬김에서 생명이 나오고 영생에 이른다.   [하나님의 안식은 창조를 즐기심이다] 하나님은 모든 창조를 이루신 후 창조를 즐기셨다. 그의 지혜와 권능으로 창조가 이루어졌으니 하나님은 자기의 창조를 만족하셨다.   [즐김은 모든 일을 완성한 후에 온다] 창조는 하나님의 첫 번째 큰 사역이다. 하나님은 그의 지혜와 권능으로 그의 작정을 따라 광대무변한 우주를 만드셨다. 창조주 하나님은 그의 창조를 만족하시고 즐기셨다. 그는 창조의 아름다움, 웅장함, 질서정연함, 모든 사물들의 움직임을 만족하시고 즐기셨다. 하나님이 창조를 즐기심은 구속이 완성된 후에도 계속될 것이다. 그는 처음 창조 시에만 안식하신 것이 아니고 지금도 안식하신다. 창조가 완성된 종말에서도 하나님은 자기의 창조를 즐기시고 만족하실 것이다. 종말의 즐김에는 구원을 완성하심에 대한 만족도 포함된다. 하나님은 모든 창조를 즐기셨다. 광대무변한 우주뿐 아니라 가장 작은 조각들도 다 하나님의 지식의 결정체이다. 하나님은 무한한 존재이시므로 다른 존재들에 의해 자기의 창조를 인정받으실 필요가 없었다. 그냥 하나님이 자기의 창조를 즐기심으로 만족하셨다. 그의 권능과 지혜를 만족하시고 즐거워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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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0
    오비도제일장로교회October 03, 2024 안식일은 주일을 바라보게 한다
    [모든 생활의 중심은 하나님 섬김이어야 함(마22:37-38; 4:10)] 사람의 모든 생활의 중심은 하나님 섬김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안식일 생활의 시작이고 모든 날의 목표이다. 이렇게 안식일을 사람들에게 주신 것은 바로 하나님을 섬기고 경배하며 찬양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모든 사업에 우선해서 하나님 섬김이 사람의 본분임을 늘 기억해야 한다. 각 사람이 자기의 생업에 주력하여도 첫 번째 본분은 하나님 섬김임을 늘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 섬김을 모든 것에 우선해야 한다.   [안식일은 주일을 예표한다] 창조가 마감되고 창조를 기념하여 안식일이 준수되었다. 그러므로 창조가 마감하는 금요일 저녁에 안식일이 시작하여 토요일 해지는 때에 안식일이 그친다. 첫 안식일 제도는 해가 질 때 시작하므로 언제나 해 뜨는 아침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바로 창조의 완성의 아침을 바라보게 한 것이다. 곧 참 안식이 이루어질 영원한 안식을 바라보게 한다. 율법 아래 안식일도 첫 안식일 제도와 동일하게 해질 때 시작하여 해질 때 마침으로 늘 아침을 바라보게 되었다.   [안식일은 주일을 바라보게 한다] 첫 창조는 재창조 곧 첫 창조의 완성을 바라보게 되어 있다. 첫 창조는 저녁 해질 때 마감되었지만 재창조는 해 뜨는 아침에 시작되었다. 지는 해는 다음 날 아침을 바라보게 한다. 따라서 처음 창조는 재창조를 바라보게 되어 있다. 재창조는 그리스도의 부활의 날에 시작되었다. 재창조는 그리스도의 부활로 시작하고 부활의 권세로 완성된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세로 재창조가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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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9
    오비도제일장로교회October 03, 2024 안식은 하나님 경배이다
    [안식은 하나님 경배이다] 모든 창조물들이 완성되었으니 마물이 창조주를 경배함이 마땅하다. 자기들을 지으신 조물주를 찬양함은 당연한 도리이며 귀결이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은 모든 창조가 다 하는 것이고 인간만이 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창조가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였다. 그의 지혜와 권능과 크신 덕과 창조에 나타내신 모든 호희를 인해 창조주를 감사하고 찬양하였다.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존재 목적이다. 따라서 모든 인간은 하나님 섬김을 삶의 첫 자리로 삼아야 한다.   [아담이 하나님의 안식에 동참] 안식은 하나님 경배이므로 하나님 경배자인 아담이 그 안식에 동참한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안식은 사람과 함께 하신 안식이다. 하나님은 만물 창조 후 모든 조물에게서 경배를 받으셨다. 아담은 경배의 제사장이므로 안식에 동참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나님은 창조로부터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기 위해 창조 후 안식하셔야 했다. 따라서 타락은 첫 안식일 이전에는 발생하지 않았다.   [생명은 하나님 섬김에 대한 보상] 하나님 섬김이 인간의 존재 목적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긴 자들만이 살게 된다. 인간이 받을 영생은 하나님 섬김에 대한 보상이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자들은 다 멸망에 이른다. 찬양과 경배는 창조주에게로 지향되고 다른 피조물에게로 향해질 수가 없다. 하나님의 창조세계에 창조주 아닌 피조물을 경배하는 것은 창조질서 자체에 어긋난다. 그러므로 다른 경배대상을 갖는 것은 멸망하는 것밖에 없다. 타락 후 하나님을 섬김는 길은 예수 믿음이다. 예수 믿음이 구원이고, 예수 믿음이 하나님을 섬김이어서 믿는 자들이 영생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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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8
    오비도제일장로교회September 08, 2024 하나님의 안식(창2:1-3)
    ☞ 하나님의 안식(창2:1-3) 하나님은 창조를 마감하신 후 안식하셨다(창1:31-2:3). 이 안식은 창조의 종료이지만 또 창조를 즐기심을 뜻한다. 창조주 하나님은 창조를 인해서 기림과 찬송과 경배를 받으심이 합당하다. 하나님의 안식은 바로 피조물들이 하나님을 경배함을 뜻한다.  [안식은 창조의 종결(창2:1-2)] 하나님의 안식은 그가 창조를 종결하시고 그의 사역에 대하여 만족함심을 뜻한다. 모든 창조는 그의 뜻대로 완전하게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기뻐하셨다. 그의 작정대로 창조가 다 이루어졌으므로 그것은 선하였다(창1:10,12,18,21,25,31). 이렇게 그의 지혜와 권능이 발휘되어 이루어졌으므로 그의 영광이 크게 현시되었다. 따라서 창조가 바로 하나님의 영광의 무대가 되었다. 하나님은 창조사역을 마감하시고 창조를 좋아하셨다. 자기 창조를 즐기심 혹은 만족하심이 바로 “좋았더라” 혹은 “매우 좋았더라”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창조를 마감하고 안식하셨다.    [안식은 질서의 확림(창2:2)] 창조과정에 나타난 모든 혼돈이 제거되고 질서가 확립되었다. 그것은 창조과정의 종료로 이루어졌다. 하나님의 안식은 온 우주에 질서가 완전히 확립되었음을 뜻한다. 혼돈이 제거되어 창조가 코스모스 곧 우주가 되는 일이 안식으로 이루어졌다. 질서의 확립 없이는 안식은 불가능하다. 혼돈과 무질서에서는 안식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안식은 질서 확립이 이루어졌음을 뜻한다. 따라서 창조주가 창조 사역을 쉬심은 모든 창조에 질서가 완전히 확립되었음을 뜻한다. 하나님이 창조를 종료하시기 전에는 아직도 혼돈과 무질서였다. 창조의 정상적인 운행이 바로 이루어졌다고 단언할 수 없다. 창조를 마감하고 안식하시므로 모든 창조가 하나님이 정하신 법질서대로 움직였다. 창조주는 모든 창조에 질서를 확립하시므로 안식에 이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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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7
    오비도제일장로교회September 07, 2024 창조주는 언약을 체결하셨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하여 아담에게 통치권이 부여되었다] 인류에게 정부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노아홍수 이후이고 니므롯에게서 왕권이 정식 발현되었다(창10:8-12). 그러나 이미 아담에게 통치권이 부여되었다. 창조세계의 대리통치자이므로 그에게 사물들을 다스리고 어거할 수 있는 권세와 권위가 주어져 있었다(창1:28). 아담은 통치권을 자연과 인류 위에 행사하였다. 다스림의 권세는 후손에게 전달되어 인류 전체를 공동체로 다스리는 정치의 형태로 나타났다. 통치는 설득과 권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칼의 권세로 이루어졌다. 이런 통치 형태는 분명 인류의 타락으로 결과한 것이다.      [창조는 하나님 나라의 자리로 조성되었다] 창조는 백성들의 거소일 뿐 아니라 활동의 자리이고 활용의 대상이다.인류는 창조를 계발하여 활용함으로 문화가 이루어지게 해야 할 직임을 지녔다. 나라는 백성과 백성의 문화활동으로 성립한다. 그러므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을 전심으로 섬겨야 하고 창조를 계발해야 했다. 아담은 하나님의 창조를 관찰하여 사물들의 이름을 지어 부름으로 그 존재방식을 확정했다(창2:19-20). 사물들의 이름을 확정한 것은 본성을 밝힘이고, 사물들을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아담은 사물들의 이름을 확정함으로 문화활동을 시작하였다. 하나님의 나라는 아담이 사는 땅 위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아담과 하와는 많은 자녀들을 생산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해야 했다. 아담은 문화의 창달을 위해 열심히 창조를 탐구하여 생활에 활용하였다. 먼저는 먹거리를 잘 식별하여 자기와 자식들의 생존을 보장하였다. 먹는 문제의 해결은 문화로 발전하였다. 식생활이 인류의 중요한 사항이다. 먹음으로 사람의 삶이 영위되고 보존되므로 식생활이 인간 활동의 중심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창조주는 언약을 체결하셨다] 하나님은 인류를 자기의 나라로 만드시고 그들을 백성으로 삼기 위하여 언약을 맺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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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6
    오비도제일장로교회August 26, 2024 하나님은 사람을 인류가 되게 하여 나라를 세우심
    [낙원에서 인류는 성령의 내주를 가졌다] 하나님이 성령으로 낙원에서 아담과 함께 계셨고 인격으로 아담의 인격과 함께 계셨다. 왜냐하면 성령의 오심은 성부와 성자의 오심을 뜻하기 때문이다(요14:23). 이 성령의 내주가 아담의 타락으로 철수되었다(창6:3). 그러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백성들이 다시 하나님의 백성이 됨으로 성령의 내주가 회복되었다(엡3:13; 4:30). 성령의 내주는 하나님의 충만한 거주를 예비함이다. 이 일이 완성되면 하나님이 새 인류에게 오셔서 만유 안에 만유가 되심으로 창조경륜을 다 이루신다(계21:3-5).     [하나님 나라의 시작: 하나님은 낙원에서 자기 백성을 가지심] 아담과 하와는 창조주를 하나님으로 모시므로 하나님을 섬기는 생활을 쉬지 않았다. 하나님 섬김이 아담의 본업이었다. 아담의 모든 활동은 바로 하나님 찬양과 경배였다. 따라서 하나님은 낙원에서 그의 백성과 나라를 가지셨다. 아담이 그의 아내와 함께 하나님을 섬기며 창조를 탐구하므로 하나님은 그의 나라를 가지시게 되었다. 나라는 백성과 그들의 문화 활동으로 구성된다. 아담은 하나님의 창조를 탐구하여 창조물들을 잘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또 그는 창조물들의 성질과 법칙을 알아 그들을 잘 다스렸다. 아담은 하와와 함께 많은 자녀를 생산하여 지구를 가득 채워 하나님의 나라가 되게 하는 책임을 지녔다.  [하나님은 사람을 인류가 되게 하여 나라를 세우심] 하나님은 인간을 인류로 지으심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목표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많은 백성이 산출되도록 하셨다. 백성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많은 인류가 출산되어 큰 나라가 되도록 작정하셨다. 창조주 하나님은 인류의 왕이 되기로 작정하시고 그들을 다스리기로 하셨다. 하나님의 사역의 목표는 하나님의 통치권의 확립이다. 이 통치권의 확립은 불합리한 사물들 위에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피조물들 위에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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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5
    오비도제일장로교회August 21, 2024 낙원은 성전이다(창2:9; 3:9)
    ☞ 하나님 경배의 자리   [낙원은 성전이다(창2:9; 3:9)] 아담이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 바로 낙원이다(창2:8-9). 하나님은 낙원에서 인간을 만나시고 교제하셨다. 낙원은 하나님을 섬기는 곳이므로 성전의 기능과 구조를 갖는다. 아담은 낙원에서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세워졌다. 우주도 인류의 하나님 섬김의 자리로 또 그 목적으로 창조되었으므로 성전의 구조를 갖는다. 세계가 성전의 구조로 창조되었다. 온 세계는 신인의 교제를 목표하고 창조되었다. 인간 편에서 하나님과의 교제는 기도와 예배로 이루어진다. 기도는 간구만이 아니고 모든 것을 하나님과 의논하는 일이므로 하나님과 교제를 이루는 길이다. 예배는 피조물이 하나님의 지혜와 덕과 창조를 인하여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며 감사하는 종교적 행위이다. 즉 예배는 피조물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기리는 행위이다. 사람은 낙원에서 하나님을 섬겼다.     [낙원의 성전 기능의 계승] 낙원이 아담의 타락으로 폐쇄되고 소실되자 후에 낙원의 성전 기능이 성막과 예루살렘 성전에 의해 계승되고 회복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낙원에서 찬양과 경배를 받으신 것처럼 성막과 성전에서 경배와 기도를 받으셨다. 하나님이 성막과 성전에 임재하심으로 그 곳이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다(출25:8,22; 40:17,34; 민7:1). 성육신 이후에는 모든 성전의 기능이 그리스도의 몸으로 옮겨지고 대치되었다(요2:19-21).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성육신이므로 성전 기능이 그 몸에서 성취되었다. 성전에는 하나님의 임재가 임시적이고 잠정적이었다. 그러나 그의 몸에서는 신성의 충만이 완전히 임재하셨다(골2:9). 그리고 이 임재의 방식으로 그가 백성들 가운데 완전히 자신을 나타내셨다. 부활 후에는 성전이 새 인류에게로 확장되었다(고전3:16; 6:19; 고후6:16; 엡2:21-22). 낙원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하심이 성전에서 계속되었고, 성육신으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임재가 새 백성들에게로 확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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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비도제일장로교회August 12, 2024 낙원의 조성(창2:8-17): 첫 인류의 거소(창2:15)
    [성경은 영혼이 육체와 연합하기 전에 타락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창3:6-7; 12-13)]영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노려서 타락하였다. 그러나 영혼은 영원에서 창조된 것이 아니다. 영들의 세계도 영원에서 창조된 것이 아니고 다 시간 안에서 창조되었다. 영혼이 미리 창조되어 영들의 타락에 동참했다고 하는 주장은 결코 수용할 수 없다. 영혼이 하늘에서 먼저 타락하여 그 벌로 물질세계가 창조되었으면 천사들의 타락으로는 어떤 물질세계가 창조되어 그 속에 갇히게 되었는가? 그런 주장은 불가능하며 성립할 수도 없다.   ☞ 낙원의 조성(창2:8-17): 첫 인류의 거소(창2:15)   [인류의 거소: 푸른 식탁(창2:9; 1:29)] 하나님은 첫 인류의 거소를 푸른 식탁으로 마련하셨다. 창조주는 인간을 창조하시기 전에 인간이 살 처소와 식량을 미리 다 마련하셨다. 인류의 출현 이전에 하나님이 마련하신 식탁은 푸른 풀과 나무와 채소로 구성되어 있다(창1:29). 나무와 풀에서 나온 열매와 뿌리와 잎도 함께 인간이 먹고 살도록 마련된 식량에 포함된다. 하나님은 인간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부족함이 없게 하시려고 모든 식탁을 풍성하게 미리 마련하셨다.    [인류의 식량은 채소와 씨 맺는 열매들과 과실이다(창2:9; 16)] 채소와 곡식과 과실이 참 식물이고 건강을 지키는 식품이다. 헤르만 바빙크는 타락 전 낙원에서 이미 육식이 허락되었다고 주장하지만 이것은 창1:29에 명백히 배치된다. 육식은 홍수 후에 기상과 지각의 변동으로 인구의 증가에 식량이 따르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 비상조치이다. 또 인류의 수명단축을 위한 섭리적 조치이다.  [낙원은 지키고 가꿀 장소이다(창2:15)] 낙원을 지키라고 명하심은 악의 세력이 가까이 와 있음을 암시한다. 아담은 낙원에서 무위도식하는 자가 아니라 낙원을 잘 지키며 악의 세력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여 영구히 자기의 처소로 보존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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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비도제일장로교회August 05, 2024 영혼의 유전은 성경적 가르침이 아니다
    ☞ “영혼의 유전은 성경적 가르침이 아니다”   [아브라함의 허리에 자손들이 있었다는 것은 아브라함에게서 자녀들이 출생함을 말한다(히7:5)]레위 자손들이 아브라함의 허리에 있었다고 하는 것은 레위와 다른 지파 족속들이 아브라함에게서 출생하였음을 뜻한다. 후손들의 영혼들이 아브라함 속에 이미 있다가 출생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인 레위 자손들이 다 아브라함에게서 비롯되었다. 그가 멜기세덱을 만났을 때 아직 아무도 자녀들도 출산하지 않았으므로 그들은 아브라함의 허리에 있었다고 말해진다. 영혼은 유전되는 것이 아니다.   [영혼이 부모에게서 유전된다고 하는 가르침은 텔툴리아누스에게서 시작되었고 루터교회에 퍼져 있다] 루터는 영혼의 창조를 가르쳤지만 후기 루터파에 의해 유전설이 퍼져 있다. 영혼의 유전설은 부모를 영혼 창조자로 만들고 또 영혼의 분열을 가르쳐 영혼의 본성에 어긋난다. 영혼은 영적 실체이므로 분열이 없고 통일성 곧 동일성을 유지한다.   [영혼의 선재사상은 플라톤의 이교사상이다] 영원세계에서 영혼이 창조되어 선재하다가 출생 시 육체와 결합한다고 하는 희랍철학의 주장은 오리게네스에 의해 그리스도교로 도입되었다. 그가 이단으로 정죄됨으로 교회에 별 추종자가 없다. 이것은 물질세계의 창조가 영들 세계의 타락과 그에 대한 형벌이라고 하는 플라톤 철학의 변용일 뿐이다. 물질세계는 하나님의 선한 창조이므로 하늘에서 이루어진 타락에 대한 형벌로 설명할 수가 없다. [영혼은 선재의식을 갖지 못한다] 플라톤은 지식의 획득은 영혼이 이데아 세계에 살 때 즐겼던 이데아의 회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가르침을 받지 않았다. 영혼이 선재하였으면 선재의식이 있어야 할 터인데 전혀 그런 의식이 없다. 지식은 회상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경험으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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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비도제일장로교회July 31, 2024 인간의 영혼의 기원문제: 각 사람의 영혼은 수태시 창조된다
    ☞인간의 영혼의 기원문제: 각 사람의 영혼은 수태시 창조된다   [영혼은 육체 안에서 창조된다]영혼이 인간 밖에서 창조되어 인간의 몸 안으로 투입되는 것이 아니다. 영혼의 창조 시기는 바로 수태시라고 말해야 정당하다. 육체가 상당기간 자라서 영혼이 창조되는 것이 아니다. 영혼은 처음부터 육체와 결합해야 하므로 수태 시부터 몸의 형질 안에서 창조된다.  [깨끗한 영혼이 창조되어도 죄의 오염과 죄과의 전가로 죄인으로 출생한다] 하나님이 각 사람을 위하여 영혼을 창조하셨으면 죄의 전가와 오염이 하나님의 책임사항으로 귀속된다고 여겨져서 영혼 창조를 꺼리고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영혼은 각 사람의 수태시 몸의 형질 안에서 창조된다. 죄의 오염과 전가는 몸과 결합하고서부터이다. 죄의 책임은 인격에 있으므로 영혼이 죄로 오염되고 죄가 전가된다.  [특별한 인물들의 출생은 영혼 창조로 설명된다] 특별한 인물들의 출생의 경우는 다 영혼의 창조로 합당하게 설명된다. 평범한 부모에게서 특출한 인물이 출생하는 것을 자연적인 과정으로 설명하기 쉽지 않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창조로 그런 인물들이 출산된다고 보아야 한다(삿13:3-7; 삼상1:10-19; 렘1:5). 결국 모든 영혼은 창조된다.[부모의 특성과 형질의 전달은 육체적 전달이고 후천적 형성이다] 유전적인 특성과 습성과 지능 정도는 다 육체적 부모로부터 전달된다. 후천적 가정환경도 특성과 형질의 형성에 중요한 몫을 한다. 어떤 가정환경이냐가 자녀들의 재능과 도덕적 형성을 크게 결정한다.[그리스도의 무죄성은 영혼 창조로 설명되고 변호된다] 영혼이 부모로부터 유전된다면 그리스도의 영혼의 무죄성을 바르게 설명할 수 없다. 영혼이 유전되었으면 그리스도는 죄인으로 난 것이므로 우리의 구주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성경은 한결같이 그리스도의 무죄성을 증거하고 가르친다(히4:15; 고후5:21; 벧전2:22; 요일3:5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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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비도제일장로교회July 23, 2024 인간의 구성요소
    [인간의 구성요소] 인간의 구성요소에 대하여는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인간창조에서 육체를 지으신 하나님이 영혼도 창조하셨다고 명시하셨기 때문이다. 인간은 인격적이므로 영혼과 육체로 구성된다. 영혼은 영과 혼으로 구분되지만 각각 별개의 실체로 인정될 수가 없다.   [인간은 영혼과 육체로 구성되어 한 인격을 이룸] 사람은 하나의 자기의식을 갖고 한 인격적 주체를 갖는다. 그러므로 영과 혼으로 구분된 두 실체가 육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영혼 실체가 있다. 영혼은 자기 초월적 면에서 영이라고 불린다. 또 사고 기능면에 있어서 영혼을 영이라고 부른다. 영혼은 인격적 주체, 생명의 주체이고 영은 생명의 원리로서 지목될 뿐이다. 우리의 의식에 영과 혼의 구분이 성립하지 않는다.   [영과 혼과 육체의 삼분설은 희랍철학에서 온 것임] 희랍철학에 의하면 영은 합리적 요소이고 육체는 물질로서 비합리적 요소이다. 그리하여 둘은 상반되고 상호모순되므로 둘이 합하여 조화할 수 없다. 그러므로 영에도 가깝고 육체에도 가까운 중간적 존재인 혼이 중간에 서서 양자를 결합하고 조화한다고 한다. 이런 중간 존재인 혼이 영과 육체를 조화한다는 것이 삼분설이다. 이런 주장은 전능한 창조주의 창조 교리에 어긋난다. 전능한 창조주는 처음부터 영혼과 육체가 잘 조화하도록 창조하셨다. 창조주가 물질과 영이 조화하기 어렵도록 창조하실 수가 없다. 영혼과 육체 간의 부조화 문제는 창조 자체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고 죄로 인해서 생긴 일이다. 물질은 악하고 비합리적인 영혼과 조화할 수 없다는 것은 선한 창조에 성립할 수 없다. 이런 삼분설은 인간의 주체를 둘로 나누는 것이 되고 성경의 가르침에 배척된다. 인간은 자신이 하나의 주체임을 의식한다. 영혼과 육체는 둘이 연합하여 하나의 인간 인격을 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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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비도제일장로교회July 14, 2024 가정은 예절교육의 자리
    [가정은 예절교육의 자리] 사람이 사람 노릇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일은 가정에서 이루어진다. 남자와 여자는 사회생활에서 사람으로서 행동하고 생활하는 법을 모두 가정에서 배워야 한다. 남자가 여자에게 바르게 하는 법은 남자가 자기 아내인 여자에게 행하는 예절에서 형성된다. 여자는 남자로 바른 예절을 행하는 사람으로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또 남자가 사회생활에서 바르게 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남자도 여자를 가르쳐 남편을 바르게 대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도 잘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공손하고 유순한 태도와 순종적인 자세를 갖게 해야 한다. 이것은 남자가 여자를 교육함으로 이루어진다. 자녀들이 가정에서 바른 질서와 예절을 배우면 사회생활을 바르게 하고 사람 노릇을 할 수 있다. 즉 어린 자녀들이 가정에서 인륜사회에서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가정교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녀들에게 하나님 섬기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성경의 가르침대로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인생의 가장 큰 본분임을 명심하도록 해야 한다. 사회에서도 하나님을 섬기는 자로서 살도록 가르쳐야 한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사는 것이 별개가 되면 안 된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로서 하나님의 법도를 따라 살고 외식하거나 속이는 삶이 되지 않도록 부지런히 자녀들을 교육해야 한다.   [인간의 구성요소] 인간의 구성요소에 대하여는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인간창조에서 육체를 지으신 하나님이 영혼도 창조하셨다고 명시하셨기 때문이다. 인간은 인격적이므로 영혼과 육체로 구성된다. 영혼은 영과 혼으로 구분되지만 각각 별개의 실체로 인정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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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비도제일장로교회July 11, 2024 자녀교육의 책임은 남자에게 있다
    [자녀교육의 책임은 남자에게 있다] 한 가정에서 남자가 생존의 책임과 함께 자녀교육의 책임도 진다. 자식들을 교육하는 책임이 남자에게 있으므로 자기의 자식들이 사람이 되도록 가르쳐야 한다. 학교교육만이 아니라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사는 모든 법도를 가르칠 책임이 남자에게 있다. 그리하여 자식들로 자기의 삶을 책임지는 자로 자라게 해야 한다. 사람에게 올바른 예절을 표현할 수 있도록 지혜와 힘과 지식을 가르쳐야 한다. 또 한 여자를 아내로 삼은 후에 여자와 함께 잘 사는 법을 가르치고 연습시켜야 한다. 특히 아내를 인격적으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가정은 사회의 기본단위] 한 남자와 여자가 이룬 가정은 사회생활의 기본단위가 된다. 아담과 하와가 이룬 가정은 인류사회가 되는 기본 출발점이었다. 가정이 사회생활의 기본단위이고 필수단위이므로 가정에서 사회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배우게 된다. 남자가 여자에게 바른 도리대로 행하면 사회생활에서도 바르게 살 수 있다. 여자가 남자에게 올바르게 하면 남자는 사람이 되어 사회에서 자기의 몫을 다 하게 된다. 따라서 사회생활에 필수적인 모든 예절과 법도를 가정에서 배운다. 가정에서 남자가 여자에게 하는 예법을 배우고 익힌다. 아들과 딸들이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 사람으로 사는 법을 배우고 서로에게 표현할 예절을 배운다. 그래야 사회생활에서도 올바르게 살게 된다. 사회생활에 있어서 가장 필수적인 것은 말을 바르게 하는 것이다. 말하는 것을 가정에서 처음 배우기 시작할 뿐만 아니라 바르게 말하는 법도 배운다. 가정에서 올바로 배우지 못하면 사회생활을 바르게 할 수 없다. 말을 바르게 하는 것이 사회생활의 필수요건이다. 합당하게 말하는 법을 가정에서 배우지 못하면 사회생활에서 실패한다. 그럴 경우 그 사람은 무례하고 무식한 자가 된다. 사회생활은 인격체들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인격에 합당한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인격에 대해서 합당한 말을 하는 것은 사물들에 대해서 하는 말과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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