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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믿음 바른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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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랜도바른믿음교회January 30, 2023 바른믿음으로 바른신앙을
    하루에도 몇 번씩 아니면 혹은 몇 십번, 몇 백번씩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왜 우리 삶 속에 하나님의 나타나심은 속 시원하게 보이지 않느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힘들 때, 우리에게 생각지도 않은 일들이 생겨났을 때, 우리는 간절히 주님께 지금 이 상황에서 벗어나길, 해결책이 당장 주어지길 기도해 봅니다. 하지만 그런 기도도 잠시 그 문제에 대한 해결도, 그 상황의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곤 이내 이런 생각을 합니다. 어떤 이들은 믿음이 좀 더 필요해서 그런가 보다 그래서 더 큰 믿음을 가져야 하겠다. 다른 이들은 언젠가는 해결되겠지 그저 기다려 보자 등등으로 체념하게 됩니다. 이런 우리의 믿음행위가 결국은 오늘날 성령운동의 엉뚱한 방향을 만들어 내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내 삶에 현실적으로 체험적으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내 삶에 관계하심을 느껴서라도 내가 믿는 믿음이 거짓이 아니고, 내가 믿는 신앙이 틀린 것이 아니길 바라는 간절함 때문에 방언과 예언, 신유와 치료 등 여러 가지 체험적인 은사를 느끼고 싶어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런 이들의 간절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경은 그 어디에도 우리 삶 속에 직접적인 체험으로 하나님의 존재나 그의 간섭하심이 뚜렷이 나타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신비적인 체험신앙을 가지는 것을 경계하라고 말합니다. 만약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특별한 체험이 우리 기독교의 참된 신앙이라면 욥기는 그야말로 우리에게 도덕적인 도덕경에 불과하게 됩니다. 그저 아픈 사람에게 말 잘해야 한다는 메시지만 던져 주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바른 믿음을 가진다는 것은 쉽지 않게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결코 바른 믿음을 가진다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바른 믿음을 가짐의 시작은 성경의 하나님, 우리 믿음의 조상들이 믿고 고백했던 하나님을 알게 되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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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랜도바른믿음교회January 23, 2023 새해를 맞이하며 희망하는 것
    2023년도가 밝았습니다. 한 해 한 해가 빨리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새해가 되면 생각합니다.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니 뭔가 분명 특별한 한 해가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 소망을 자신의 믿음에 담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난 시간들을 보내면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래서 새해 들어 생각지도 않은 일이 일어나면 당황하게 됩니다. 혹자는 올해 일진이 안 좋은 것은 아닌가라고 두려움을 가지기도 합니다. 이런 생각들은 다 헛된 생각일 뿐입니다. 우리 주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에 동일하신 분입니다.   우리가 오늘 우리에게 일어나는 좋지 못한 일들로 인해 염려하거나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은 그 일이 우리의 올 한 해를 지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눈에 좋지 못한 일들도 오늘 일어난 일이니 오늘만 우리에게 씨름을 줄 뿐, 내일 우리에게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실 신자들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우리 하나님의 섭리 속에 이루어지는 일이므로 불행이라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가치관과 소용돌이 속에서 살다보니 생각지도 않은 일들을 당하면 그 즉시 그것을 나에게 닥쳐진 불행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큽니다. 요셉이 형들에 의해 노예로 팔려 타국으로 갔을 때 요셉은 세상 절망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인고의 시간이 지나자 우리는 자신 뿐만 아니라 한 민족을 구원하실 하나님의 섭리를 보게 됩니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절망과 같은 순간이 더 크신 하나님의 일들을 이루시는 시작점이라면 우리는 지금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나중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나중을 기억할 수 있으려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고 지배하시는 분과 그 분이 선하신 분이라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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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랜도바른믿음교회December 18, 2022 때가 차매
    지난 주 목회칼럼을 통해 우리 주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은 죄의 전가인가 아니면 죄책(죄의 책임)의 전가인가라는 얘기를 했습니다. 오늘 날 많은 교회에서 이 부분이 정확하게 이해되어지거나 교육되어지고 있지 않다보니 심지어 어떤 신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우리를 위해 ‘죄덩어리가 되셨다’라고까지 이해하시는 분이 있었습니다. 참으로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작정 가운데 성자 하나님이 창조주 하나님이시며 또한 인간의 죄를 속량하시므로 구속주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그 속량의 방법이 바로 참 하나님이 참 인간이 되시는 것이었습니다. 참 인간이 되셨다는 말은 결국 태초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던 그 원 상태의 인간모습이었습니다. 범죄 전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온전한 피조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이 반역하므로 시편 8편에서 말하는 인간의 존귀와 영광스러움을 부패케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영원히 사는 존재로 창조하시므로 영원토록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하나님 백성을 만드셨는데, 인간의 교만과 반역이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즉 왕과 백성의 관계를 깨뜨림으로 사망에 이르게 되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작정과 언약에는 신실한 분이시므로 죽은 인간을 다시 창조하실 것을 작정하신 것이 아니라, 다시 원상태로 회복시키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율법이 말하듯 율법은 죄의 대가를 반드시 치루어야만 인간의 죽음 문제가 해결될 수 있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이미 죄로 오염된 인간이 아무리 깨끗하고 선하다고 해서 인간을 대표해서 죽을 수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죄의 값을 치루는 방법은 죄없는 인간밖에 없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구약의 제사법에서 우리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흠없고 점없는 인간이 되어 우리 죄를 대신 속량하시고자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육신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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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랜도바른믿음교회December 18, 2022 죄의 전가인가, 죄의 대가지불인가
    얼마전 동영상으로 한 목사님의 집회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유투브에서 꽤 유명세를 남기고 있는 목사님입니다. 저도 가끔 이 분의 영상을 보면서 공부도 하고 설교 참고자료로 쓰곤 했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 더 이상 이 분의 성경강의나 집회 영상을 보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개혁주의 신학을 다시 정리하고 공부하면서 많은 목사님들의 신학과 교리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발견하였기 때문입니다. 비단 이 분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이 분의 영상을 보면서 많은 분들이 동의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예전에 저도 이 분의 영상을 보면 그렇게 설교했던 적이 있음)이 우리의 죄가 예수님께 전가되어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얘기는 정말 위험천만한 말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교회에서 삼위일체 교리와 성육신 교리를 가르치지 않다보니 제 마음대로 해석하다가 생긴 오류입니다. 삼위일체와 성육신 교리만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다면 이런 잘못된 생각이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는 그렇지가 못합니다. 성경을 나름 잘 풀이한다고 하시는 분들이 기독교 교리를 바탕으로 성경을 해석하지 않고 문화적, 시대적 배경만을 가지고와 해석을 하다보니 자의적인 해석으로 할 때가 많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에 대한 해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죄없고 흠없으신 분이 우리의 죄값, 즉 죽음을 대신 치루신 것입니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죄의 전가교리를 가지고 와서 우리의 죄가 예수님께 전가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죄없으신 완전한 인간인 예수님을 죄인으로 만들어 버리는 불경을 저지르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가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면 죄인이 죄값을 치루신 것밖에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굳이 신이신 그 분이 인간이 되셔서 죽으실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냥 인간 중에 누구 하나 가장 선하게 살던 한 사람이 대신 인류를 대신해서 죽으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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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랜도바른믿음교회December 05, 2022 Incarnation(성육신)
    12월 첫째 주일을 맞이했습니다. Covid-19가 우리 삶의 많은 것들을 바꿔 놓은 것 같습니다. 요즘은 밖에 나가봐도 어느 때와 다르게Christmas의 분위기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불과 몇 전까지만 해도 추수감사절이 지나면 바로 이어 성탄절의 분위기를 거리마다 각 가정마다 느낄 수 있었는데 말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성탄절이 되면 몇 몇 분들이 주인공없는 성탄절이라 탄식하곤 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마저도 듣기 쉽지 않은 세상이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거리에서는 캐롤송도 잘 들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의 미소 속에서도 성탄의 기쁨을 나눌 수 있는 여유가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개혁주의적인 입장에서 냉철하게 생각한다면 그리 염려할 일도 아니지만, 더 이상 예전같이 성탄절을 맞이하여 아기 예수의 오심을 전하는 일들이 없음에 찜찜할 따름입니다. 그나마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예수의 상징들도 한낮 휴일의 모습으로 변한 것이 코로나 이후 이 세상이 만난 성탄절인 것 같습니다.   참 아이러니한 것은 세상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망각한 채 성탄축제를 즐김도 걱정이었는데, 이제는 성탄의 의미와 함께 그 자체 축제도 없어져 버림에 아쉬움을 갖게 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요?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어쩌다가 이렇게 바뀌어 버렸을까요? 물론 이는 우리 주님의 다시 오실 때가 다 되었음에 일어나는 현상일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성탄의 참된 의미를 다시 회복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 동안 우리가 망각하며 살았던 하나님 독생자의 성육신과 그 십자가의 의미를 회복하므로 참된 구원의 진리를 바로 잡고 복음의 시작점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그 복음의 시작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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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랜도바른믿음교회November 27, 2022 Cur Deus Homo; 왜 하나님은 인간이 되셨나?
    개혁주의 교회는 그리스도교가 유지하고 있는 교회력과 절기를 맹종하는 것은 아닙니다. 개 교단과 교회의 특성에 따라 필요로 절기를 활용합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오늘날 교회력과 절기를 지키는 것이 꼭 성경적으로 맞는 것이라고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가령 예를 들어 부활절을 대부분의 교회에서 지키고 있지만, 사실 부활절을 지키는 것은 초대교회의 풍습이 아니었습니다. 초대교회는 매 주일(일요일)을 주님의 부활일로 기념하여 이미 예배의 날로 정했었기 때문에 굳이 부활절을 따로 정해 지키는 것 자체가 이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오늘날 교회에서 지키는 절기문제도 이제는 정확하게 고민하고 집고 넘어가야할 문제가 되지 않았나 합니다. 그 중에 또 대표적인 교회절기라고 한다면 바로 성탄절기일 것입니다. 미국은 추수감사절 이후 첫 주일부터 대강절 혹은 강림절이라고 해서 성탄절까지 아기 예수의 오심을 기념하는 절기를 가집니다. 이러한 절기가 주는 의미가 없다할 수 없지만, 오늘날 교회 현실은 예전과 같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 주 예수의 오심은 신이 인간이 되었다는 성육신에 의미를 더 강조해야 하는데, 아기 예수에 초점이 맞춰져 기독교의 중요한 교리내용에 위배되어 버렸습니다. 중세 신학자 안셂은 ‘Cur Deus Homo?’라는 책을 써, 왜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는가라는 신학적 고민을 했습니다. 오늘 날 교회가 회복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교리이자 믿음은 바로 ‘성육신 교리’입니다.   기독교는 구원종교입니다. 인간이 왜 구원받아야 하는 존재이며, 이 인간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이 인간이 되실 수밖에 없었던 그 이유를 우리가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한 우리의 구원은 거짓입니다. 인간의 구원은 공짜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신이 인간이 되어 치루신 값비싼 대가였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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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랜도바른믿음교회November 20, 2022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의 인자하심을
    이번 주는 한국 교회절기와 미국 국경일로 지키는 추수감사절이 있는 주간입니다 미국이 처음 추수감사절을 지키게 된 것은 1789년 11월 26일 미국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의 선포로 지키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후 1863년 링컨 대통령이 11월 마지막 목요일을 추수감사절을 국가 기념일로 선포하였고, 1941년 루스벨트 대통령에 의해서 11월 넷째 주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규정하면서 현재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 국경일은 매년 대통령이 국가 기념일로 선포(Declaration of National Holy Day)로 선포해야만 된다고 합니다.   전통적으로 미국민은 추수감사절이 되면 그동안 함께 하지 못했던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여 즐거운 식사 시간과 함께 할 수 주위 가난한 이웃을 초청해서 음식을 함께 먹었다고 합니다. 그렇다 보니 추수감사절이라고 하면 추수감사절 음식인 칠면조를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하지만 최초 추수감사절을 지킬 때만 해도 우리가 알고 있는 데로 인디언들을 초청해서 한해 수확한 곡식으로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이 주된 모습이었다고 알고 있지만, 한 해를 지켜 주시고 지금까지 유지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예배가 더 강조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매년 대통령의 영에 의해 선포되는 추수감사절 규정에도 보면 반드시(?) 가족들이 함께 예배해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고 합니다.   어느 덧 기독교적인 절기들이 서서히 세상적인 의식으로 바뀌어 가고 있음에 안타까움을 자아냅니다. 언제부턴가 추수감사절과 성탄절의 중심이 빠져 버리고 인간들이 즐기는 날로 변질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추수감사절의 원 목적은 미국을 건너왔던 이민자들이 어려운 상황과 환경 속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의 섭리가 있으므로 보존될 수 있었음에 감사한 날입니다. 추수감사절은 우리의 먹고 마심에 집중하는 날이 아니라 올 한해 하나님의 도우심에 감사하는 날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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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랜도바른믿음교회November 13, 2022 내가 믿사오며
    지난 주 월요일 중앙플로리다 올랜도지역 교회협의회 목회자 모임이 있었습니다. 물론 아직 우리교회는 정식으로 교회협의회 회원이 되지 못했습니다. 교회협의회 회원이 되기 위해서 가추어야 할 자격조건이 있기에 시간은 좀 걸립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교회협의회 목회자 모임에 참석할 수 있도록 초대해 주셨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목회자 부부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함께 찬양을 하며 기쁨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모인 목사님들의 교단과 교회의 형편은 다 다르지만, 주 안에서 우리는 다름이 없었습니다.   식사와 대화의 시간을 통해 각 교단이 가지고 있는 신학적 정체성과 교회의 방향성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런 대화 가운데 한 목사님으로부터 ‘복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얘기를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었습니다. 작금의 교회는 교회의 정체성과 신학의 정체성이 많이 사라져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오늘날 교회는 그 교회가 가진 정체성(교단의 신학적 중심사상)을 많이 강조하지 않다 보니, 교회의 운영과 교인들의 신학, 교리교육이 많이 무너져 있음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지난 번 섬겼던 교회에서도 교회의 중심을 휘어잡고 있는 이들이 교회가 속한 교단의 신학적 정체성을 무시한 채 되지도 않는 자신들의 잘못된 생각으로 교회를 좌지우지하다 보니 웃지 못할 일들이 교회 내에서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번 모임에서 목사님들이 교회 안의 구성원들의 맴버쉽(자격회원)과 어탠던스(일반참석자)에 대한 구별을 두어서 교회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지킬 필요가 있음을 나누었습니다. 교회는 같은 신앙고백을 하는 이들의 모임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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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랜도바른믿음교회November 09, 2022 감사의 계절을 맞이했습니다.
    11월을 맞이했습니다. 2022년도 이제 두 달 밖에 안 남았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11월을 감사의 달로 생각합니다. 물론 미국에 사는 한인들이 느끼는 마음이겠지만, 11월에는 추수감사절이 들어 있는 달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시간이 화살같이 지나간다는 그 옛적 모세의 고백에서도 듣는 바와 같이 우리의 시간이 하루하루가 다르게 빠르게 지나고 있음을 인생의 연륜을 통해 느끼게 됩니다. 하루하루 바쁘게 지나는 시간을 보내다 보니, 가끔은 소소하게 지나쳐 버린 감사의 일들이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지난 시간 여러분들에게 감사하게 느끼게 된 일들이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 생각해 보셨는지요? 감사라고 한다면 많은 이들이 우리에게 득이 되거나 좋은 일들만 기억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섭리 안에선 좋은 일들 뿐만 아니라 좋지 못한 일들도 감사할 수 있는 일이 된다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은 잊어서는 안 됩니다.   저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왜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실 때 다른 이를 용서함같이 나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셨을까입니다. 이 말은 문맥상으로도 우리가 아는 하나님의 성품상으로도 맞지 않는 말입니다. 내 죄를 용서해 주셨기에 나도 다른 이를 용서할 수 있는 감사가 되는 것인데, 주님은 그리 가르쳐 주지 않으셨습니다.   어쩌면 그리스도교의 신앙은 역설인지 모릅니다. 좋은 것에만 감사하는 것만이 감사가 아니라 내게 주어진 좋지 못한 환경과 상황이 곧 선한 하나님의 섭리임을 믿고 감사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감사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너무나 좋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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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랜도바른믿음교회October 30, 2022 종교개혁일과 할로윈
    오늘은 종교개혁 505주년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잊혀진 그리스도교의 중요한 날이기도 합니다. 언제부턴가 그리스도인들 조차도 종교개혁일이 언제인지, 종교개혁을 누가 시작하였으며, 종교개혁의 주요한 핵심내용이 무엇인지 까마득히 잊어버렸습니다.   특히 10월 31일 종교개혁일을 기억하는 그리스도인들보다 오히려 세상 사람들과 함께 할로윈으로 기억하는 이들이 대부분이 되었습니다. 현대교회들은 세상적인 할로윈을 기독교화하기 위해 10월 31일을 ‘할렐루야 나잇(Hallelujah Night)’으로 대체하고자 합니다.   왜 이런 일들이 어처구니없이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요? 아마도 지금으로부터 505년 전, 1517년 10월 31일 독일의 수도사였던 마틴 루터가 자신이 섬기던 예배당 입구문에 당시 로마교회의 잘못된 구원관과 신학, 교황권에 대해 95개조의 반박문을 내걸면서 시작된 종교개혁일었음을 잘 모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10월 31일을 세상 사람들이 축제하는 할로윈을 대신하는 ‘할렐루야 나잇’으로 지킬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종교개혁일’을 우리 자녀들에게 가르치면서 그리스도교의 참된 구원관과 교리를 가르치는 날로 정착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적어도 종교개혁의 핵심화두였던 ‘믿음으로 구원받음’이라는 ‘이신칭의’ 교리를 한 번쯤 깊이 배워볼 수 있는 시기이길 바랍니다. 아울러 이틀 전 한국의 이태원에서 일어난 할로윈 축제 압사참사는 어쩌면 오늘날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을 향한 마지막 경고의 메시지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이들의 유족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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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랜도바른믿음교회October 11, 2022 이탈리아 여성 총리의 명연설; 동성애가 왜 가정을 파괴하는 사탄의 전략일 수 밖에 없는가
    이탈리아 여성 총리 연설 왜 가정이 중요한가? 우리는 누구와 싸워 이겨야 하는가?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 왜 동성애가 가정을 파괴하는 사탄의 전략인가? 보수주의가 왜 중요한 것인가? 기독교 보수신학의 중요성을 이해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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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랜도바른믿음교회June 20, 2022 반전의 드라마, 에스더
    6월 생명의 삶 말씀묵상이 ‘에스더’서입니다. 에스더서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대로 ‘죽으면 죽으리이다’라는 구절 때문에 신자들 사이에서 잘 알려진 말씀입니다. 또한 에스 더가 흥미로운 것은 드라마틱한 내용의 전개와 스릴넘치 는 반전이야기가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그런 상황 속에서 위기가 기회가 되는 일을 보면서 감탄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에스더서의 이야기가 신자들에게 매력적인 진짜 이유는 그 반전의 드라마를 만들어 가시는 주체이신 ‘하나님’에 대한 언급이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에스더는 그 어디에서도 ‘하나님’이라는 단어나 ‘여호와’라는 단어를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당시 구약이 정경화 과정을 거칠 때 이 에스더서가 과연 정경에 적합한 것인지에 대한 찬반이 많았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할 것 없이 이 되어진 일들이 인간의 힘과 능력으로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음을 보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을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스더는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비록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 책일지라도 다른 어느 책보다 하나님의 일하심과 섭리를 가장 잘 드러내 주는 책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어떤 신학자는 에스더서의 하나님을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과 생각지도 않은 장애물들과 해결되지 않는 일들로 인해 많은 신자들이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똑같이 말합니다. 과연 하나님이 계십니까? 왜 내게는 안 보이시는 것입니까? 절망과 좌절의 시간이 길면 길수록 이런 우리의 한탄은 더 클지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삶의 역경속에서 뒷짐지고 계시는 하나님을 보는 것이 아니라, 반전을 계획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비록 지금은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아도, 그래서 망한 것 같은데, 이제는 더 이상 재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 같은데, 바로 그 때 우리 주님은 우리를 다시 세우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누구도 예측하지 못하는 그 시간에 우리 주님은 우리를 다시 세우십니다. 지금 여러분들 가운데 혹여 인생의 긴 터널을 지나고 계시는 분이 계십니까? 아니면 지난 날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텅 빈자가 되었습니까? 우리 주님은 반전의 드라마를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다 끝난 것 같은 내 인생을 아무도 예상할 수 없는 그런 방법으로 다시 채우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사람들 다 안 된다고, 불가능하다고 생각해도 우리 주님은 당신의 뜻과 방식대로 반전을 만들어 가십니다. 이 번 한주도 우리의 삶과 우리교회를 반전의 드라마로 만드실 주님을 기대하는 한 주되시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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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랜도바른믿음교회June 13, 2022 신앙도 믿음도 듣고 배워야 자랍니다
    서울 온누리교회 담임목사님이셨던 고(故) 하용조 목사님께서 온누리교회를 개척하면서 모든 교인들에게 일대일제 자양육이라는 프로그램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내세운슬로건이 있었는데, ‘배우든지 가르치든지’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슬로건에서 볼 수 있듯이 고 하용조 목사님과 온누리교회의 철학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목회초년시절 교인들을 양육하는 것이 무엇이 중요한가라고 생각할 정도로 교인들을 가르치는 사역에 조금은 등한시하였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서른 중반의 젊은 나이에 한인 인구 3,000여명 체 안 되는 지역에서 가장 늦게 시작한 개척교회로써 매 주일 모여 예배하는 것만도 벅찬 시간을 보내던 시기였습니다. 교인들은 교인들대로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이 땅의 전형적인 이민자의 삶을 살고 있었기에 매 주일 빠지지 않고 예배당에 나와 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한 그런 교회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보니 교인들과 성경공부를 한다는 것과 말씀으로 양육한다는 것은 큰 교회에서나 할 법한 사치에 불과했습니다. 교인들의 거주지가 평균 20마일 넘는 곳에서 교회를 다닌다거나 연세가 팔십이 훌쩍 넘은 분들이 교인의 반 이상인 교회에서 성경공부를 한다는 것은, 그것도 일대일양육을 한다는 것은 가능치 않는 일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늘 목회의 목마름이 있었습니다. 30대 푸른 청춘을 다 쏟아부은 교회를 후임목사님께 부탁하고 올 때 간절한 바람과 기도가 있었습니다. 저의 부족함으로 양육하지 못한 교인들을 후임목사님께서 잘 양육해주셔서 그 교회가 교회로써 반듯하게 서기를 말입니다.   이민목회를 하면서 교인들이 가지는 잘못된 생각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알기까지 많은 시간이 흘러야만 했습니다. 이민교회 안에 일어나는 문제들과 갈등들이 어디서 비롯되는지 많은 목회자들이 시행착오를 겪은 후에야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은퇴할 시기가 되었다는 말씀들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이런 반복적인 실수(?)를 하지 않고자 부단한 관심과 연구를 했었습니다. 그리고 알게 된 것이 있었습니다. 지난 주 금요일은 모세오경 중 신명기 말씀을 통독하는 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신명기 말씀 속에서 계속 반복적으로 나오는 구절이 있었습니다. 바로 ‘듣고 배우고 행하라’라는 말이었습니다. 이전까지 신명기를 통독하면서 눈에 잘 들어오지 않던 부분이었는데,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이민교회의 교인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다면 신앙생활과 교회생활은 그냥 교회만 다니면 자동적으로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아닙니다. 절대 그리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신앙과 믿음도 듣고 배울 때만 성장합니다. 여전히 변화되지 않고 미숙성한 교인들이 많은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교회에 가르침과 배움이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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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랜도바른믿음교회June 06, 2022 90일 성경통독 이제 시작하십시오.
    아마 주보를 받아들고선 목회칼럼 첫 번째 타이틀, ‘90일 성경통독을 이제 시작하십시오’라는 문구를 보자마자 머리가 아파오시는 분이나, ‘올 것이 온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있으시리라 생각됩니다. 2021년 9월 12(주)부터 시작된 90일 성경통독이 다음 주 화요일(6/14)이면 3독이 끝납니다. 아마도 작년부터 충실히 90일 성경읽기를 따라 오신 분들은 벌써 성경을 3독 하신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 4독 째를 남겨두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성경통독을 어려워하십니다. 하지만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90일이면 충분히 1독을 하실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하루에 10장 가까이 읽는 것이 쉽지 않다고, 바쁜 데 성경읽을 시간이 어디있냐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을 줄 압니다. 아닙니다. 하루 10장 읽는 것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가 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어렵다고 느낄 뿐입니다. 지난 4월 셋째 주, 우리는 시편 150편을 6일만에 통독을 해 보았습니다. 그 때 느낀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하루에 길어도 1시간만 투자하면 90일이면 성경 1독이 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오래 전부터 꿈꾸어 오던 것이 있었습니다. 물론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가운데 한 가지를 여러분과 나눈다면 제가 목회하는 교회의 모든 교인들 모두가 성경 100독을 하는 꿈입니다. 저는 물론이거니와 교인 모두가 성경 100독을 인생의 목표로 해 보는 것입니다. 성경 100독이 어려울 것 같습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 여러분께서 2022년부터 4독을 하시게 된다면 10년이면 40독입니다. 그리고 20년이면 80독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25년이면 드디어 100독을 완성하실 수 있습니다. 물론 지금부터 우리가 25년간 무탈하게 살아 있다는 전제하에 100독을 하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통독 100독을 하는데 25년까지 안 걸립니다. 처음 30독까지가 5-6년 정도 걸릴 것입니다. 그리고 그 뒤로부터는 하루에 한 시간에 50장씩 읽어내려가는 속도가 붙을 것입니다. 그렇게 따지면 2032년도가 되면 우리교회의 모든 교우들은 성경 100독을 달성하게 되실 것입니다. 이 목회칼럼을 읽으시는 분들은 너무 황당한 이야기라고 생각하실 분들이 있을 줄 압니다. 절대 황당한 일이 아닙니다. 이제부터라도 저와 함께 90일 통독시작해 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90일 성경통독을 하실 수 있도록 조금 도움을 드릴까 생각도 합니다. 7월달부터 매달 마지막 주는 아침경건회를 성경통독하는 주간으로 지킬까 합니다. 지난 번 고난주간 시편 통독을 했듯이 7월 마지막 주부터 매달 마지막 주는 온 교우들이 함께 아래에 나와 있는 일정표대로 성경을 통독하면서 가다보면 어느 순간 여러분들도 혼자서 90일 통독을 완주하게 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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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랜도바른믿음교회May 31, 2022 민주당의 협의 없는 차별금지법 공청회 단독의결
    민주당의 협의 없는 차별금지법 공청회 단독의결되었다고 합니다. 함께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기도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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